北 "사상 다른 사람 접촉 금지하는 국보법 철폐"…南 "적십자 원칙 위배" 맞서
통일부 남북회담 사료 2차 공개…이후락-김일성 면담 등은 제외
[남북대화 사료] 北, 70년대 이산가족 회담서 난데없이 국보법 철폐 요구
북한은 1970년대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사안을 논의하는 적십자회담에서도 국가보안법 철폐 등 정치적 요구를 했다는 사실이 남북대화 사료를 통해 재확인됐다.

통일부가 30일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 제4권에 따르면 남북은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11개월간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7차례에 걸쳐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진행했다.

1∼2차 회담은 쌍방지역에서 열린 최초의 방문회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평양에서 열린 1차 본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는 나중에 외무부 장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하다 아웅산 폭탄테러로 희생된 이범석 당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였고, 북측 단장은 김태희 조선적십자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북측 김태희 단장은 인사말에서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 친척들이 주소를 알아내고 자유로이 오가면서 혈육의 회포를 나눈다면 그 기쁨 그 감격이야말로 얼마나 크겠느냐"고 말했다.

남측 이범석 대표도 "우리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5천만 겨레에게 다시는 실의와 낙망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남북은 1차 본회담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 주소·생사 확인 ▲ 자유로운 상봉 및 자유로운 방문 실현 ▲ 자유로운 서신거래 ▲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 ▲ 기타 인도적 해결 문제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남북대화 사료] 北, 70년대 이산가족 회담서 난데없이 국보법 철폐 요구
1972년 9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2차 본회담에서도 7·4 남북공동성명 정신, 동포애, 적십자 인도주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한다는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3차 본회담부터 이산가족 주소·생사 확인의 방식 등에 대한 이견으로 삐걱거리더니 6차 본회담에선 북한이 난데없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했다.

북측 김태희 단장은 당시 연설에서 "사상, 이념, 제도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연계를 가지거나 남북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현행 법규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이산가족 상봉마저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 간 접촉'이라는 억지 주장을 편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 이범석 대표는 "북한적십자회 측에서 발언하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사상적 성격을 지닌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적십자 기본원칙에 정반대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남북 적십자회담은 그다음 회차인 1973년 7월 7차 본회담을 마지막으로 장기간 중단됐다.

북한이 순수 인도주의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을 국보법 철폐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통일부가 남북회담 사료를 공개한 것은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에 공개한 남북회담 사료는 1972년 8월부터 1977년 12월까지 5년간의 기록으로, 총 3천28쪽에 달한다.

7차례의 남북적십자 본회담 외에 7차례의 남북적십자 대표회의, 25차례의 남북적십자 실무회의 진행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끌어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측 김영주 당 조직지도부장 간 협상과 이후락 부장 및 김일성 당시 내각 수상 등과의 회담 등은 공개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예비심사 과정에서 의견이 갈렸던 부분이 있어 우선 제외했다"며 내년에 추가 검토 절차를 거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문서는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 등에 마련된 문서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