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 분열·양극화 대응 수단" vs "왜 우리만 사과해야 하나"

네덜란드가 과거 250년간 지속된 노예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각에선 '왜 우리만 사과해야 하느냐'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여론이 첨예하게 분열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거 노예제에 국가차원 사죄?…반으로 쪼개진 네덜란드
네덜란드 의회 브리핑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 총리는 오는 19일 과거 노예제에 대한 공개 연설을 할 예정이다.

연설은 네덜란드가 250년간의 경제·문화적 '황금시대'를 누리며 착취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노예 60만 명에 대한 사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7∼19세기 유럽인의 노예였던 1천200만 명의 약 5%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인식 전환 프로젝트를 위한 2억 유로(2천700억원), 노예 박물관 건립을 위한 2천700만 유로(370억원) 등의 예산지출 방안 발표도 포함된다고 네덜란드 방송사 NOS는 전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중미 국가 수리남의 국가배상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은 네덜란드가 충분한 협의 없이 성급하게 사과를 추진한다고 항의하는 등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정부 차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회 다수당은 지난 10월 수리남과 다른 중미 네덜란드 식민지 출신국인 퀴라소, 보네르 현지 실사 이후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최근 18개월간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헤이그의 시장들과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이 개별적으로 노예제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현지 실사에 참여했던 기독교연합당의 돈 시더 의원은 "과거 식민지 시대의 노예무역과 경제가 오늘날까지도 이 나라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네덜란드의 다문화 사회의 분열과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사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샤론 딕스마 위트레흐트 시장은 "오늘날 우리 시민들이 노예제와 무관하고, 조상들의 잘못에 책임이 없다고 해서 역사적 과오와 반인륜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노예제 연구소 'NiNsee'의 린다 노이트미어 소장은 사과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는 소수 민족과 소외된 공동체에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데 투자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거 노예제에 국가차원 사죄?…반으로 쪼개진 네덜란드
실제 네덜란드 경찰과 일부 세무관청 등에서는 조직적인 인종차별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네덜란드 통계청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자 출신 가정은 평균적으로 좁은 집에 거주하고 교육 수준과 소득이 낮으며 건강 상태가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노예제에 대한 사과는 아직 찬반이 엇갈리는 논쟁적인 주제다.

여론조사 기관 I&O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노예제에 대한 사과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38% 정도에 불과했다.

애셔 반 더 쉴드 I&O 연구원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예제가) 오래전 일이라거나, 다른 세대에 관한 일이라고 말한다"며 "사과를 하면 갑자기 보상금을 내야 하는 게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과는 '싸구려'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역사학자 마르텐 반 로셈은 "과거에 일어난 끔찍한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게 요즘 매우 유행하지만,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완전히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노예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 모든 서방 정부들도 사과해야 하나.

18세기 말 네덜란드를 점령한 프랑스도 사과해야 하고, 미국도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1세대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하기보다는 강제노동이나 차별과 같은 현재의 끔찍한 상황에 대해 돈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