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예금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금융당국에 건전성 규제 완화를 요청했지만 당국은 국제 기준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95조원+α’ 규모 자금 공급 대책을 발표한 은행들은 수신금리 인상과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면서도 유동성 규제 비율은 준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3일 “은행권이 최근 건의한 순안정자금조달비용(NSFR)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는 국제 기준이어서 섣불리 수용하기 어렵다”며 “잘못 건드렸다가 자칫 한국 금융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인상만 줄 수 있어 대외신인도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NSFR은 은행이 1년 내 이탈할 수 있는 부채 규모를 충족할 만큼 장기 조달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지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100%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NSFR이 중장기 규제라면 LCR은 30일간 순현금유출액 대비 예금과 국공채 등 유동자산의 비율을 뜻하는 단기 건전성 규제다. 주요 은행은 지난주 금융당국에 유동성 공급 확대 등 정부 차원의 자금시장 대책에 협력하는 대신 NSFR·LCR 등 건전성 규제를 추가로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금융위는 구축 효과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당부했다. 이어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연 5%대까지 끌어올리며 2금융권의 유동성이 마르자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처럼 자금 조달 길이 막혔지만 은행이 돈 쓸 일은 오히려 많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측에 회사채 매입과 기업 대출을 늘려 ‘돈맥경화’ 현상을 푸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결국 자금 조달 없이 보유 자금만으로 유동성 공급을 늘리라는 얘긴데 그러려면 건전성 규제 비율을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4대 은행의 NSFR은 103~109% 수준으로 권고치(100%)를 소폭 웃돌고 있는데 이 규제 부담을 덜어달라는 얘기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