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외화 차입금이 15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외화 자금 수요가 증가하면서 은행들이 해외 금융회사에서 외화를 차입해 대출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복합 위기 온다"…달러 쟁여놓는 4대 은행

기업 외화 대출 수요 급증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은 46조528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31조4508억원)보다 47.9%(15조777억원) 급증한 규모다.

외화 차입금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국민은행이었다. 올 3분기 국민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은 18조3630억원으로 전년(10조8137억원)보다 69.8% 늘었다. 이어 우리은행이 50.7%(6조8060억원→10조2581억원) 증가율을 기록했고, 신한은행(34.9%·6조5818억원→8조8835억원)과 하나은행(24.4%·7조2493억원→9조239억원)이 뒤를 이었다.

전체 조달액 가운데 외화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3분기 국민은행의 전체 조달액(475조6670억원) 가운데 외화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지난해(2.5%)보다 1.4%포인트 증가했다. 우리은행(1.9%→2.6%), 신한은행(1.7%→2.1%), 하나은행(1.8%→2.1%) 등도 각각 0.7%포인트, 0.4%포인트, 0.3%포인트 늘었다.

외화 차입금이 급증한 것은 기업의 외화 대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3분기 외화 대출금 평균 잔액은 23조2360억원으로 지난해(16조1048억원)보다 7조1312억원 증가했다. 외화 대출 증가는 ‘환율 급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초 1200원 안팎에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은 점점 올라 9월 1445원50전까지 치솟았다. 연말엔 1500원 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들은 내년 경기 침체와 추가적인 환율 상승에 대비해 안전자산인 달러를 확보하고자 은행 창구를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공급망 교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른 점도 이유로 꼽힌다.

커지는 외환 시장 변동성

외화 조달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에 대비해 은행들이 외화 차입금을 늘린 측면도 있다. 현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는 연 3.75~4.0%로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0%)보다 1.0%포인트 높다. 통상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하면 국내에서 외국 자본이 이탈하고, 원화 가치 하락세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해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충분한 외화 조달에 나선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한·미 간 기준금리 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에선 한은이 24일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Fed는 다음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가 지속되고 무역적자 기조가 장기화하면 기업들의 외화 대출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경상수지 적자와 해외 투자 손실 확대 등으로 외화 유동성이 악화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난 상황에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