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최정의 남녀 천하통일 도전
중국의 루이나이웨이(59)는 특유의 전투바둑으로 ‘반상의 철녀(鐵女)’라고 불렸다. 1992년 응씨배 4강으로 세계대회 여성 최고 기록을 달성했고, 2000년 국수전에선 유창혁, 이창호, 조훈현 9단을 연파하며 여성기사 최초로 타이틀을 따냈다. 세계 바둑계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불세출의 여성기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0대에 중국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1988년 여성 최초로 9단으로 승단했지만 이듬해 연인인 장주주 9단이 톈안먼 시위에 참가한 이후 함께 미국 일본 등을 떠돌다 1999년 4월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정착했다. 일본에서 활동하기를 원했던 이들을 일본기원이 거절한 것은 어쩌면 한국에는 다행이었다. 무적의 루이를 통해 단련된 한국 여성기사들의 실력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돌로 겨루는데도 남녀의 기력 차이가 크다고 한다. 정상급 프로라고 해도 여성선수와 남성선수가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건 드물다는 것.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정확한 건 없다. 감성지향적인 여성은 국지전에 강하고 전투적이지만 목표지향적인 남성은 실리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루이나이웨이도 한 인터뷰에서 “남자는 전체적인 것을 보는 눈이 좋지만 여자는 부분적인 면을 더 잘 본다”며 “여자는 남자보다 감성적인 면이 많은데 바둑에서는 이런 부분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체력의 차이, 남녀 선수 풀의 차이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바둑여제’ 최정 9단(26)이 세계 바둑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4일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4강전에서 변상일 9단을 꺾고 여성기사로는 최초로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해 7일부터 사흘간 신진서 9단(22)과 결승 3번기를 펼친다. 이전까지 여성 최고기록은 루이나이웨이의 응씨배 4강이었다. 세계바둑랭킹을 공표하는 고레이팅스(Go Ratings)에 따르면 현재 세계 1위는 신 9단이며, 100위권의 여성선수는 최 9단(69위)이 유일하다. 두 사람의 상대 전적은 신 9단이 4승 무패로 앞서 있다. 최 9단이 세계바둑사의 한 획을 그을지 주목된다.

서화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