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피해 탓 전기 안 들어와 발전기 돌려…포항, 홈에서 울산 우승 저지
매연 뒤덮인 스틸야드…포항은 '자존심', 울산은 '품격' 빛났다
2022시즌 가장 중요한 '동해안 더비'가 열린 11일 포항 스틸야드의 공기를 먼저 채운 건 응원의 함성이 아닌 매캐한 기름 냄새였다.

8대의 발전기가 경기장 곳곳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엔진이 기름을 태우고 뿜어내는 매연을 피할 공간은 거의 없어 보였다.

심지어 경기장 안 관중석에서도 매연이 코를 찔렀다.

지난달 제11호 태풍 힌남노 피해로 스틸야드 일부가 물에 잠긴 여파였다.

경기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해 경기를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를 돌린 것이다.

애초 이날이 평일인데도 경기가 오후 3시로 앞당겨진 것도 전기 문제로 조명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야간 경기는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석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30여명의 취재진은 본부석 자리에서 경기를 보다가 하프타임 때 실내 기자실로 가 노트북을 충전해야 했다.

이렇게 수해 피해의 아픔이 남아있는 스틸야드에서 포항은 '라이벌' 울산 현대와 값진 무승부를 일궈 홈 팬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

매연 뒤덮인 스틸야드…포항은 '자존심', 울산은 '품격' 빛났다
울산이 이날 승리했다면 17년만의 K리그 우승을 확정하는 터였다.

전반 40분 울산 바코가 선제골을 넣어 시나리오는 울산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듯했으나 후반 34분 이호재가 머리로 동점골을 꽂아 울산의 우승 파티를 무산시켰다.

포항 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방방 뛰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들어온 김기동 포항 감독은 "존경하는 홍명보 선배님이 이끄는 울산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또 바라지만, 우리 홈에서 울산 우승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고 큰소리쳤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포항의 자존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매연 뒤덮인 스틸야드…포항은 '자존심', 울산은 '품격' 빛났다
그는 "우리 홈에서 울산이 우승 축제 여는 것 자체가 감독으로서 싫었다"면서 "선수들에게 '너희는 울산에 우승 내준 선수로 기록되고 싶으냐'고 말했다.

울산이 여기서 우승 못 하게 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울산은 비록 우승 잔치를 벌이지 못했지만, 챔피언 등극을 앞둔 구단다운 '품격'을 보였다.

울산은 애초 이날 이겼다고 해도 스틸야드를 떠들썩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현수막 하나만 준비해 그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을 기념하는 사진만 찍으려고 했다.

미리 포항 측에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울산 응원석 앞에는 '울산현대축구단은 포항시의 빠른 수해 피해 복구를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포항의 원정 응원석 티켓은 1천100장이 모두 팔렸다.

눈대중으로도 포항 서포터스보다 울산의 원정석 팬들 수가 많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