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티켓, 15만원 뚫었다…"30만원으론 데이트도 못해"
뮤지컬업계에는 지난 4년간 ‘국내 제작 작품의 VIP석 티켓 가격은 15만원 이내로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티켓 두 장 가격이 30만원을 넘으면 ‘뮤지컬 데이트’를 즐기려는 커플들의 수요가 확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뮤지컬 기획사들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작품을 올리건, 인기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만들건 간에 이 가격을 지켜왔다.

뮤지컬 입장료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VIP석=15만원’이 깨졌다.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에 각종 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난 탓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뮤지컬 수요가 되살아난 것도 한몫했다. “입장료를 올려도 충분히 좌석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얘기다. 공연계에선 영화와 클래식 공연에 이어 뮤지컬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티켓 가격 인상’ 움직임이 더 가파르고, 더 넓게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4년 만에 오른 뮤지컬 입장료

6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뮤지컬 제작사 쇼노트는 오는 11월 개막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티켓 가격을 16만원으로 책정했다. 국내에서 만든 뮤지컬 입장료를 15만원 이상으로 매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R석 13만원, S석 10만원, A석 7만원으로 정했다.

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1950년대 미국 뉴욕 웨스트 사이드 지역 버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흥행한 데 힘입어 전 세계에서 라이선스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선 김준수 등 스타 배우 출연이 확정돼 벌써부터 티켓 ‘완판’(완전판매)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이 작품을 시작으로 ‘VIP석=16만원’이 새로운 가격공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도 일부 대형 작품이 가격 인상의 ‘스타팅 테이프’를 끊으면 다른 작품들이 곧바로 뒤따랐기 때문이다. 2010년 12만원이던 VIP석 티켓 가격은 2018년 15만원까지 올랐다. ‘티켓 두 장 가격이 30만원을 넘기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판단에 4년째 이 가격을 지켜왔다.

쇼노트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여파로 의상, 소품, 조명, 영상 등 무대 제작비가 대폭 증가한 데다 인건비도 큰 폭으로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뮤지컬 제작사들도 연말 공연 티켓 오픈을 앞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제작사는 ‘VIP석=15만원’ 벽을 깨는 건 부담이지만 올 들어 뮤지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걸 감안할 때 가격 저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티켓 판매액은 182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910억원)의 두 배로 늘었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는 “전용 극장에서 똑같은 공연을 계속 올리는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와 달리 한국에선 3~4개월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며 “단기 공연 위주인 국내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생기면 티켓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클래식 공연 티켓값도 ‘고공행진’

입장료가 오른 건 뮤지컬뿐만이 아니다. 다음달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하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의 R석 가격은 40만원으로, 4년 전(35만원)보다 약 15% 올랐다. 지난 6월 내한한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의 R석 티켓 가격(34만원)은 2017년(18만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업계에선 지난해 40만원대 후반이던 해외 톱 클래스 오케스트라의 R석 가격이 조만간 50만원 벽을 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공료가 워낙 많이 올라서다. 유명 오케스트라를 국내로 초청하려면 지휘자, 단원, 스태프 등 많으면 100여 명의 비행기표를 구매해야 한다. 첼로 등 대형 악기도 한 사람 자리를 차지한다.

한 클래식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공연장 좌석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비용이 대폭 증가해 입장료를 올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달로 예정됐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 공연이 취소된 것도 물류비 급증 등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원인이었다.

티켓 가격이 오른 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영화관은 코로나19 여파로 경영 상황이 나빠지자 수차례 입장료를 올렸다. 현재 주말 입장료는 1만5000원이다. 4DX 등 특별관 티켓은 2만원을 훌쩍 넘는다. 팬데믹 이전보다 30%가량 올랐다.

신연수/조동균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