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올해로 페놀 오염 사건 31주년을 맞이하게 된 낙동강.
올해로 페놀 오염 사건 31주년을 맞이하게 된 낙동강.
환경 이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다. 즉 기존 환경규제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점검해 환경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환경규제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때로는 중첩적이거나 상호 모순되는 경우도 있어 이를 준수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 법률은 1963년에 제정한 공해방지법이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에 관한 법률이라기보다는 보건위생에 관한 법률의 성격이 강했다. 1977년에 환경보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환경법 시대가 열렸다. 1990년에 이르러 소위 ‘환경 6법’이라 불리는 환경정책기본법, 대기환경보전법, 수질환경보전법, 소음진동규제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이 연이어 제정되면서 환경법의 기초를 다졌다. 환경 관련 주무관청 역시 종전 환경처와 환경청을 거쳐 1994년 환경부로 승격되며 체제가 확립됐다.

페놀 사건 계기로 특별법 제정

환경법은 시대와 함께 발전해왔고, 수많은 법률이 새롭게 제정됐다. 환경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사전 예방·사전 배려 원칙(precautionary·preventive principle)’이 있다. 환경이란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능한 경우에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전에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환경규제는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중대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위협이 있을 경우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환경 악화를 방지하는 비용효과적 조치를 지연시키지 않고 취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법 역시 이러한 사전 예방·사전 배려의 원칙에 기초한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예를 들어 환경영향평가제도), 한편으로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가져온 환경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강력한 규제가 도입되고 환경부 권한을 강화하는 사후적 처방이 반복돼온 것이 사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반복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과 2011년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1991년 3월 경북 구미시 소재 A 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30여 톤의 페놀 원액이 대구시 상수원인 취수장으로 흘러 들어간 사건이다. 낙동강을 타고 흘러 들어간 페놀 원액은 영남 전 지역에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생겼다. 제정 당시 이 법은 특정수질유해물질, 특정대기유해물질 등을 배출해 공중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 형사처벌을 하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환경 범죄 등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환경범죄단속법)로 명칭이 바뀌었고, 오염물질 불법 배출 사업자에게 과징금과 오염 정화 비용을 부과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2019년 개정을 통해 허위측정행위, 유해화학물질 부적정 관리 및 무허가·미신고 배출시설운영까지 과징금 부과 대상을 확대했고, 과징금 액수도 해당 사업장 매출액(3년 평균 매출액)의 5%까지 강화했다. 다만, 자진신고 제도를 신설해 스스로 위반행위를 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하는 경우 과징금을 감면받을 수 있게 했다.

그동안 환경범죄단속법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있었던 B 석포제련소가 첫 사례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이 제련소에 매출액에 비례한 과징금 약 280억원을 부과했다. 환경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해당 석포제련소는 수년간 낙동강 최상류에서 중금속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불법 배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과징금 280억원 첫 사례

공장 내부에서 유출된 카드뮴이 공장 바닥을 통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결국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 하천 수질 기준 대비 120배가 검출됐다. 카드뮴의 낙동강 유출량은 하루 약 22kg(연간 약 8030kg)에 달한다. 향후 환경범죄단속법에 따라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배출시설을 보유한 기업은 사전에 법 위반 사항이 없는지 점검하고 자체 점검 결과 위반 사항이 발견된 경우 자진신고 여부를 검토해 과징금 규모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제도는 자진신고 시 형사처벌을 면제해주지만, 환경범죄단속법의 경우 형사처벌에 대한 감면은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 PGH, CMIT·MIT 등의 물질이 지닌 흡입독성으로 인해 폐섬유화증 등의 건강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신고된 사망자가 1700명을 넘고, 피해 구제 신청자가 7600명을 넘는 대규모 사회적 참사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회수 및 유통 금지 조치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나 아직도 실질적 피해 구조는 미흡한 상황이다. 올 초에 제시된 조정안 초안에 대해 관련 기업과 피해자 사이에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 참사의 영향으로 화학물질의 위해성 사전 확인 및 평가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2013년에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화학물질이 시중에 유통되기 전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위해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도입됐다.

종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화학물질관리법으로 개정하면서 유해화학물질 사용과 관련한 위험을 예방하는 규제도 강화됐다. 이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의 영향으로 2018년에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했다. 이러한 화학물질 규제 도입에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이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델이 된 것은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이미 2007년에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를 시행해 유럽연합 내에서 연간 1톤 이상 제조 또는 수입하는 모든 화학물질(혼합물 및 화학물질을 포함한 제품)에 대해 유통량 및 유해성 등에 따라 등록 평가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EU 신 화학물질관리제도’를 도입했다. 2012년부터는 살생물제품에 관해 살생물제 규제법(New EU Biocidal Products Regulations)을 도입했다.

환경규제 전반에 걸쳐 글로벌 규제의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국내 사업장만 보유한 기업도 선진국의 환경규제 도입 상황을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환경 사고는 기업에 즉각적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사후적으로 피해를 복구하거나 보상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지난한 노력이 소요된다. 지속 가능 경영이나 ESG 내재화의 관점에서 법률 컴플라이언스, 특히 환경규제에 대한 철저한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 편익 분석의 관점에서 봐도 환경규제가 갈수록 복잡하고 엄격해지고 있어 사전 투자와 예방 조치가 사후 대응에 비해 더 효율적이다.

김현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