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30%가량을 책임져온 전자·반도체·자동차산업 경기가 올 들어 급속히 동반 위축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금리 인상이 세계인의 소비심리를 강타하면서 ‘재고와의 전쟁’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수출 효자산업 반도체의 경우 7월 수출 증가율이 2.1%에 불과했다. 2016년 이후 5년9개월 만의 한 자릿수 증가율이다. 스마트폰·가전 등에서 소비 위축이 본격화하며 세계 반도체시장 매출 증가율이 6개월 연속 하락한 데 따른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긴 대기줄이 만들어질 만큼 예외적인 호황을 누렸던 자동차 시장에서도 수요 둔화가 뚜렷하다. 현대차는 7.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을 지난해 수준으로 낮춰 잡았다. 7월 유럽의 신차 판매가 15.4%나 감소하는 등 이상기류가 확연해진 탓이다.

전자·반도체·자동차 동반 부진은 4개월 연속 무역적자, 30년 만의 대중국 무역적자와 궤를 같이하는 통계로, 한국 경제의 위기 경고음이다. 이미 상반기 설비투자가 35.2% 급감한 상황에서 주력 수출산업마저 흔들린다면 수출 부진→투자 감소→성장률 저하의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주력 산업 부진을 초래한 위기 요인을 당분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7월 ‘고용 서프라이즈’에 미국은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대만해협 사태’에서 보여지듯 미·중 충돌도 격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세계경제 블록화’를 가속화해 수출 한국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신흥국 경제위기도 확산일로다. 지난 5월 스리랑카의 국가부도 선언에 이어 라오스 파키스탄 몰디브 방글라데시가 줄줄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위기신호가 쌓이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권력다툼뿐이고, 정부는 태평해 보인다. 진정세를 보이는 유가와 곡물가격이 경기를 상승 반전시키는 요행만을 기대하는 것인가. 국가부채가 1000조원을 웃돌아 이제 위기국면에서 국채 발행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나랏빚을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경기 지원책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법인세 인하 등 경제활력을 북돋울 수 있는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위기극복을 위해 기업인 사면을 요청하는 경제계 요구에도 적극 호응할 필요가 있다. 야당의 무조건 반대와 선동을 이겨내고 국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