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논점과 관점] 대처의 노동개혁을 다시 주목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1985년 3월 영국 탄광노조와의 1년 전쟁에서 승리한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영국병’을 어떻게든 고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4년간에 걸친 철저한 준비,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개혁을 관철한 파트너 이완 맥그리거였다. 대처는 1979년 집권 직후부터 노조의 각종 특권을 없애는 노동관계법 개정과 석탄 비축 확대 등 총파업 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국철강을 성공적으로 민영화한 구조조정 전문가 맥그리거를 석탄공사 사장으로 앉혔다. 그렇게 시작된 노조와의 전쟁은 1년간 약 6조원의 경제적 손실과 경찰관 3500명 사상, 시위대 1만1300명 체포(8400명 유죄 선고)라는 상처를 남기고 대처의 완승(完勝)으로 종결됐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이긴 것만큼이나 기쁘다고 했고, 이후 공기업 개혁도 성공시키며 ‘유럽의 병자’ 영국을 다시 열강 반열에 올려놓았다.

4년 준비로 탄광노조 무릎꿇려

현재 한국 상황은 대처가 노조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시기와 닮았다. 강성 노조에 정부가 끌려다니면서 임금이 급상승하고, 마구잡이식 복지정책에 재정 적자가 폭발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오일 쇼크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실업률까지 급증한 것도 정도의 차이일 뿐 한국의 최근 흐름과 비슷하다. 총파업으로 실각한 히스 총리가 “이 나라를 다스리는 게 노조냐 정부냐”는 말을 남긴 것도 곳곳에서 “이게 민주노총의 나라냐”는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과 오버랩된다.

다른 게 있다면 당시 영국에 있던 대처의 강력한 리더십과 치밀한 대응 전략이 우리에겐 부재(不在)하다는 것 정도일까. 그와 관련된 웃지 못할 일화 두 가지. 지난달 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갑자기 스위스 출장을 떠났다. 화물연대 파업을 코앞에 두고서다. 국제노동기구(ILO)총회에 참석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자 민노총이 “새 정부의 노사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중대 시점에 노동 총괄부처 장관이 자리를 비우게 됐다”고 비꼬았다. 노조 쪽에서 봐도 황당한 모양새였다. 결국 화물연대 파업은 8일 만에 정부가 백기를 드는 것으로 끝났다. 대통령실에서는 이 장관의 출장에 ‘격노’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 장관은 주 52시간제 보완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그러자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상황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 가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팀워크·전략 있어야 개혁 성공

집권 초 꼬인 스텝은 이뿐 아니다. 새 정부는 ‘불법 파업에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입만 떼면 강조했지만 정작 폭력이 난무하는 하이트진로 한국타이어 파업 현장이나 대우조선해양 불법 점거 현장 등에서는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두 달밖에 안 된 정부를 12년 집권의 대처 정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새 정부의 노동개혁이 말만 앞서지, 그에 걸맞은 밑그림과 팀워크, 전략이 부족하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상대해야 할 주요 개혁 대상이 민노총이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촛불시위 청구서를 들이밀어 몸집을 정확히 두 배(조합원 2016년 65만 명→2021년 113만 명)로 불린 ‘법 위의 권력자’들 말이다. 그 지도부는 지금도 각종 현장 파업을 부추기며 새 정부 리더십에 대해 ‘간’을 열심히 보고 있다. 적절한 때 총파업을 무기로 새 정부의 목줄을 거머쥐고 다시 한번 ‘노조 공화국’의 주인이 되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대처가 노동개혁을 4년간 전쟁처럼 준비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