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25주년 르포] 태풍 속 국기게양식…홍콩의 앞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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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안 온 15분 야외행사 취재에 코로나 검사 6번
경찰 출신 첫 행정수장 등장…경찰은 중국군 스타일 '거위걸음' 행진 "존 리 행정장관 내외가 입장하십니다.
"
귀빈석 정중앙 두 자리가 비어 있어 혹시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등장하나 했더니 아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일찌감치 와서 앉아있길래 마지막 등장인물은 시 주석일 수 있겠다고 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오늘은 7월 1일. 홍콩의 수장이 바뀌는 날이다.
캐리 람은 오늘부로 '전임 장관'이 됐고 존 리가 제6대 홍콩 행정장관으로 취임하는 날인 것이다.
2019년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해 원성이 자자한 경찰 출신 리 신임 행정장관은 부인과 함께 미리 착석해 있던 내빈 300명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여유있게 입장했다.
이날 오전 8시 홍콩컨벤션센터 앞마당인 바우히니아 광장에서는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일을 맞아 중국 국기와 홍콩 깃발을 거는 게양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 이어 홍콩컨벤션센터 안에서 시 주석이 주재하는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존 리가 이끄는 홍콩 6대 행정부 취임식이 뒤따랐다.
국기 게양식은 태풍 경보 3호가 발령된 가운데 진행됐다.
밤새 퍼부었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그쳤지만 거센 바람이 요란하게 휘몰아쳐 주변 나무들이 '쏴쏴' 큰소리를 냈고 25주년 축하 현수막들이 마구 춤을 췄다.
내빈들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론의 촬영을 위해 설치된 임시 단상 위에 서 있던 취재진의 몸이 여러 차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의 강도가 셌다.
중국군 헬기가 행사장 주변을 순찰했고, 게양식이 시작하자 홍콩 경찰은 인민해방군 스타일의 '거위걸음'(goose step)을 선보이며 행진했다.
거위걸음은 군인들이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면서 걷는 행진이다.
이전까지 홍콩 경찰은 무릎을 90도로 올리며 걷는 영국식 행진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식민지 유산이라는 비판이 중국에서 제기되자 지난해부터 중국식 제식을 선보였고 주권 반환 25주년인 이날부터 중국식 제식 훈련을 전면 도입했다.
중국식 제식은 소총을 오른손에 들고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드는 '거위걸음'이 특징이다.
궂은 날씨 속 홍콩에서 커져만 가는 중국군의 존재감을 목도하자 이게 홍콩의 앞날을 상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격변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홍콩은 급격한 중국화 속에서 국제금융 허브의 위상을 유지할지, 아니면 중국의 작은 도시로 전락할지 기로에 서 있다.
전날 홍콩에 도착한 시 주석은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견지하겠다"고 밝혔으나 바깥세상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당장 이날 행사를 앞두고 홍콩이 중국처럼 융통성 없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언론의 취재를 제한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국기 게양식은 15분 남짓 진행되는 짧은 행사다.
무엇보다 야외 행사다.
현장에 설치된 취재 구역은 내빈들과 족히 50∼60m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홍콩 당국은 행사 취재진에게 지난 26일부터 닷새간 매일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도록 하더니 행사 당일인 1일에는 새벽 1시30분까지 집합해 현장에서 다시 PCR 검사를 받게 했다.
이에 기자는 이날 0시30분 당국이 모이라는 완차이의 육상 스타디움으로 가 검사를 받았다.
이번 국기 게양식 취재를 위한 6번째 PCR 검사다.
당국은 그때부터 검사 결과가 나오는 4시간여 동안 취재진을 스타디움의 시멘트 관중석 의자에 앉아 대기하도록 했다.
한밤중에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결국 취재진의 절반 이상은 노숙자처럼 관중석에 벌러덩 몸을 뉘었다.
여기가 홍콩인가, 중국인가.
공무원들은 그사이 물 한 모금 권하기는커녕 이런 어처구니없는 불편한 상황에 대해 모른 척했다.
현장에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각오는 했으나 행사장으로 이동할 버스 안이나 실내 어디 의자에 앉아서 할 줄 알았다.
4시간여 사라졌던 공무원들은 오전 5시10분께 검사 결과 모두 음성이 나왔다며 나타났다.
이후 취재진은 주변에 세워진 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아주 꼼꼼히 받고 오전 6시가 돼서야 겨우 행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비바람 속 모두가 들고 온 우산은 전부 행사장 반입이 금지됐다.
접이식 소형 우산도 못 가져간다고 했다.
홍콩에서 2014년 '우산혁명'이 일어났던 것이 생각났다.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를 점령한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탄 발사에 맞서기 위해 우산을 들고나오면서 붙은 이름이다.
그때부터 우산도 홍콩 시위대의 상징이 됐다.
공무원들은 대신 우비를 나눠줬다.
상식적이지 않은 과도한 코로나19 검사도 이해 불가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 언론이 취재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홍콩기자협회와 로이터 통신, AFP 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이번 기념식 취재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만 초청장을 보냈고, 초청장을 보낸 언론사 중에서도 일부 취재진에 대해 취재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딱히 외신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SCMP, 명보, 홍콩01 등 상당수 홍콩 매체들도 취재 통제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친중 매체 대공보 기자와 홍콩 정부의 사진 담당 직원도 취재가 거부된 것으로 알려져 기준이 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홍콩기자협회는 역대 주권 반환 기념식 행사에 대해 당국이 언론사에 초청장을 보내고 그와 관련해 취재 신청을 하라고 했던 적이 없다며 언론 통제라고 비판했다.
당국은 항의하는 언론사들에 보안과 방역 규정을 고려한 것이라고만 답했다.
당국은 또한 이번 취재와 관련한 안내를 두 번 하면서 매번 불과 반나절 정도 전에 이메일로 '쇼트 노티스'(short notice) 했다.
이메일을 놓치면 취재 기회도 날아가는 것이다.
되도록 취재를 오지 말라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날 취재진을 인솔한 공무원들에게 '언론사에 초청장을 보낸 게 처음이라는데 맞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품으로 돌아간 지 25주년. 홍콩은 중국의 주장처럼 안정을 되찾고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나.
/연합뉴스
경찰 출신 첫 행정수장 등장…경찰은 중국군 스타일 '거위걸음' 행진 "존 리 행정장관 내외가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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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석 정중앙 두 자리가 비어 있어 혹시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등장하나 했더니 아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일찌감치 와서 앉아있길래 마지막 등장인물은 시 주석일 수 있겠다고 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오늘은 7월 1일. 홍콩의 수장이 바뀌는 날이다.
캐리 람은 오늘부로 '전임 장관'이 됐고 존 리가 제6대 홍콩 행정장관으로 취임하는 날인 것이다.
2019년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해 원성이 자자한 경찰 출신 리 신임 행정장관은 부인과 함께 미리 착석해 있던 내빈 300명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여유있게 입장했다.
이날 오전 8시 홍콩컨벤션센터 앞마당인 바우히니아 광장에서는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일을 맞아 중국 국기와 홍콩 깃발을 거는 게양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 이어 홍콩컨벤션센터 안에서 시 주석이 주재하는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존 리가 이끄는 홍콩 6대 행정부 취임식이 뒤따랐다.
국기 게양식은 태풍 경보 3호가 발령된 가운데 진행됐다.
밤새 퍼부었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그쳤지만 거센 바람이 요란하게 휘몰아쳐 주변 나무들이 '쏴쏴' 큰소리를 냈고 25주년 축하 현수막들이 마구 춤을 췄다.
내빈들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론의 촬영을 위해 설치된 임시 단상 위에 서 있던 취재진의 몸이 여러 차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의 강도가 셌다.
중국군 헬기가 행사장 주변을 순찰했고, 게양식이 시작하자 홍콩 경찰은 인민해방군 스타일의 '거위걸음'(goose step)을 선보이며 행진했다.
거위걸음은 군인들이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면서 걷는 행진이다.
이전까지 홍콩 경찰은 무릎을 90도로 올리며 걷는 영국식 행진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식민지 유산이라는 비판이 중국에서 제기되자 지난해부터 중국식 제식을 선보였고 주권 반환 25주년인 이날부터 중국식 제식 훈련을 전면 도입했다.
중국식 제식은 소총을 오른손에 들고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드는 '거위걸음'이 특징이다.
궂은 날씨 속 홍콩에서 커져만 가는 중국군의 존재감을 목도하자 이게 홍콩의 앞날을 상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격변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홍콩은 급격한 중국화 속에서 국제금융 허브의 위상을 유지할지, 아니면 중국의 작은 도시로 전락할지 기로에 서 있다.
전날 홍콩에 도착한 시 주석은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견지하겠다"고 밝혔으나 바깥세상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당장 이날 행사를 앞두고 홍콩이 중국처럼 융통성 없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언론의 취재를 제한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국기 게양식은 15분 남짓 진행되는 짧은 행사다.
무엇보다 야외 행사다.
현장에 설치된 취재 구역은 내빈들과 족히 50∼60m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홍콩 당국은 행사 취재진에게 지난 26일부터 닷새간 매일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도록 하더니 행사 당일인 1일에는 새벽 1시30분까지 집합해 현장에서 다시 PCR 검사를 받게 했다.
이에 기자는 이날 0시30분 당국이 모이라는 완차이의 육상 스타디움으로 가 검사를 받았다.
이번 국기 게양식 취재를 위한 6번째 PCR 검사다.
당국은 그때부터 검사 결과가 나오는 4시간여 동안 취재진을 스타디움의 시멘트 관중석 의자에 앉아 대기하도록 했다.
한밤중에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결국 취재진의 절반 이상은 노숙자처럼 관중석에 벌러덩 몸을 뉘었다.
여기가 홍콩인가, 중국인가.
공무원들은 그사이 물 한 모금 권하기는커녕 이런 어처구니없는 불편한 상황에 대해 모른 척했다.
현장에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각오는 했으나 행사장으로 이동할 버스 안이나 실내 어디 의자에 앉아서 할 줄 알았다.
4시간여 사라졌던 공무원들은 오전 5시10분께 검사 결과 모두 음성이 나왔다며 나타났다.
이후 취재진은 주변에 세워진 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아주 꼼꼼히 받고 오전 6시가 돼서야 겨우 행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비바람 속 모두가 들고 온 우산은 전부 행사장 반입이 금지됐다.
접이식 소형 우산도 못 가져간다고 했다.
홍콩에서 2014년 '우산혁명'이 일어났던 것이 생각났다.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를 점령한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탄 발사에 맞서기 위해 우산을 들고나오면서 붙은 이름이다.
그때부터 우산도 홍콩 시위대의 상징이 됐다.
공무원들은 대신 우비를 나눠줬다.
상식적이지 않은 과도한 코로나19 검사도 이해 불가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 언론이 취재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홍콩기자협회와 로이터 통신, AFP 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이번 기념식 취재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만 초청장을 보냈고, 초청장을 보낸 언론사 중에서도 일부 취재진에 대해 취재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딱히 외신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SCMP, 명보, 홍콩01 등 상당수 홍콩 매체들도 취재 통제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친중 매체 대공보 기자와 홍콩 정부의 사진 담당 직원도 취재가 거부된 것으로 알려져 기준이 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홍콩기자협회는 역대 주권 반환 기념식 행사에 대해 당국이 언론사에 초청장을 보내고 그와 관련해 취재 신청을 하라고 했던 적이 없다며 언론 통제라고 비판했다.
당국은 항의하는 언론사들에 보안과 방역 규정을 고려한 것이라고만 답했다.
당국은 또한 이번 취재와 관련한 안내를 두 번 하면서 매번 불과 반나절 정도 전에 이메일로 '쇼트 노티스'(short notice) 했다.
이메일을 놓치면 취재 기회도 날아가는 것이다.
되도록 취재를 오지 말라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날 취재진을 인솔한 공무원들에게 '언론사에 초청장을 보낸 게 처음이라는데 맞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품으로 돌아간 지 25주년. 홍콩은 중국의 주장처럼 안정을 되찾고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