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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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내에서 낙태권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낙태와 관련된 논쟁이 세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한국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들어서만 국회에서는 낙태 제도와 관련된 두 건의 입법 토론회가 있었다. 한건은 서정숙 의원, 다른 한건은 조해진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로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 금지 관련 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국내에 낙태가 완전히 허용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낙태 허용 여부와 관련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며 여기에는 복잡한 도덕적, 의학적 이슈들이 얽혀 있다.

한국에서 낙태금지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한국의 낙태 허용과 관련된 가장 흔한 착각은 2019년 낙태금지 관련 법안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정'을 곧 '낙태 전면 허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당시 헌재 판결문을 살펴보면 "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형법에 명시된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것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담당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태아의 생명권은 보호해야 하지만, 여성의 결정 역시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헌재 판결의 요지다. 낙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여건을 감안하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완전히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낙태를 전면 금지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해당 판결문에서도 밝혔듯 태아의 생명 역시 가능한 보호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시킬 수 있는 제도를 법 개정을 통해 마련하라는 것이 헌재의 요구다."

결국 기존 낙태 금지법의 일정 부분이 헌법 불합치를 통해 효력을 잃었지만, 현재 한국은 낙태가 전면 허용된 국가가 아니다. 태아 생명 보호의 필요성은 헌재도 인정한만큼 특정 상황에 따라서는 여전히 낙태에 대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인만큼 낙태로 형사 처벌을 받을지 여부는 구체적인 케이스에 따라 갈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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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몇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헌재는 기존 낙태금지법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관련 내용을 보완해 입법을 끝낼 것을 국회에 주문했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을 모두 존중할 수 있는 낙태금지의 기준을 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보완 입법은 몇주까지 무제한 낙태를 허용할지를 놓고 첨예하게 나뉜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안은 태아 생명권 보호가 우선이다. 언제까지를 새로운 생명체로 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조해진 의원은 가장 짧은 임신 6주 이전까지만 낙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태아의 심장이 뛰는 시점이다. 서정숙 의원 법안에서는 10주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태아의 뼈 형성이 끝나는 때다.

정부안은 14주까지를 기한으로 제시하고 있다. 태아가 모체를 떠나 생존이 가능한 최소한의 시점으로 선진국 등에서 인정하는 기준이다. 임신 초기와 중기를 가르는 시점이기도 하다.

민주당 의원들의 여성의 결정권 존중을 위해 주수에 상관 없이 여성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인숙 의원은 시점에 관계 없이 여성이 낙태를 결정하면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박주민 의원은 2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 발의를 검토했지만, 당내 반대에 부딪혀 주수 제한을 없애는 안을 내놓는 것으로 선회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낙태 이유가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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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보완안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무제한 낙태는 14주까지 허용하지만, 특정 조건에 처한 여성에 한해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특정 요건에는 태아의 유전자 이상, 근친상간 및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이 제시됐다. 특기할만한 점은 여기에 '사회경제적 이유'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부모가 모두 미성년인 경우 등 도저히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경우로 인정될 때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아이를 낳더라도 키울 수가 없다고 인정될 때 숙려 기간 등을 거쳐 낙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기존 낙태죄가 여성의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만큼 결정의 폭을 보다 넓게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낙태 하면 처벌되는 건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잠시 내려놓고 원점에서 곰곰이 생각하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 이전에도 낙태법 처벌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2019년 이전 한국은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했다. 유전자 문제 등이 발견되는 한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이를 어길 때 산모는 징역 1년 이하, 의료진은 징역 2년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같은 처벌조항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낙태 수술은 광범위하고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 사실상 관련 법안은 사문화된 상황이었다.

국회에서 무제한 낙태의 임신 이후 최소 기간을 6주로, 10주로, 14주로 설정하든지 여부로 바뀔 것은 사실상 없다. 관련 법안을 입안한 의원들과 정부 당국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이 논의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의 말이다.

"낙태 허용 시점 논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들 생명을 보호하는가다.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 여건으로 낙태를 결정하는 이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선택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단순히 설득 뿐 아니라 아이를 낳고 몸조리 할 때까지의 보호와 경제적 지원, 이후 입양까지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낙태법을 둘러싼 논의는 어떻게 보면 이같은 고민의 필요성을 촉발하는 계기로 볼 수도 있다. 다행히 정부는 물론 의원들도 헌재의 불합치 판정을 계기로 관련 출산 및 입양 인프라 정비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