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사이렌 속 한달 공전한 국회…외환위기 전야와 다른가
“국가 차원의 위기 대응은커녕 경제팀도 못 꾸리고 있습니다.”

한 경제 관료는 26일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얼마나 준비돼 있나’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달 29일 전반기 국회 종료 이후 한 달 가까이 원 구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업무를 시작도 못하고 있는 데 따른 불안감을 토로한 것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7일 지명됐지만 인사청문회가 이뤄지지 않아 ‘후보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가계 및 소상공인 부채, 자금시장 관리를 책임지는 금융위원장의 업무 공백으로 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도 삐걱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제위기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한국 정치는 위기 대응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는 원 구성도 못할 정도로 협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여당은 당권 다툼, 정부는 의사소통 혼선으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하다고 우려한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1996년 말 노동법 파동과 뒤이은 총파업으로 국정 주도력을 상실했다. 측근 비리로 김영삼 대통령이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가운데, 위기 대응을 해야 할 경제부처와 한국은행은 집안싸움을 벌였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와 비교해 구조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여소야대 속에 출범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확고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었다”며 “윤 대통령은 정치 신인으로 여당 장악력이 약한 데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 내 권력투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취약한 정치 리더십은 위기 발생은 물론 대응에도 갖가지 문제를 낳는다. 2000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1971년 경기침체와 1980년 2차 오일쇼크,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분석했다. 1971년과 1980년의 경제 상황이 1997년에 못지않게 나빴음에도 위기에 빠지지 않았던 배경에는 강력한 정치적 안정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수습과 관련된 연구는 2011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서 이뤄졌다. 1990년대에 경제위기를 맞았던 한국과 일본의 회복 속도가 정치 시스템에 따라 갈렸다는 것이다.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과 달리 한국이 빠른 회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해당 연구는 ‘김대중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여당과 정부의 집중적 권력구조’를 꼽았다.

물론 여소야대를 비롯한 현재 정치 조건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 구성을 비롯해 위기 대응에 필요한 정치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법제사법위원회를 양보할 테니 원 구성 협상을 진행시키자”는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국민의힘은 아직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협상 원칙만 강조하기보다는 위기 대응의 시급함을 살펴 타협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당무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도 소꿉장난 같은 몸싸움을 벌이는 여당 지도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 상황에 국회 및 여당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