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판 '종이의 집'…남북분단 넣어 차별화했다지만 설정은 다소 엉성
리메이크를 한다는 건 모험이자 도박이다. 세계적 인기를 얻은 드라마나 영화라면 더 그렇다. 많은 이들이 열광한 작품일수록 원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진다.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사진)은 그럼에도 과감히 이 길을 선택한 작품이다. 2017년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넷플릭스 시리즈물 ‘종이의 집’은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영어권 시리즈였다. 한국판 종이의 집은 원작에 한국적 배경과 설정을 접목했다.

공개 직후 성적은 좋다.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한국 베트남 대만 인도네시아 모로코 5개국에선 1위에 올랐으며, 원작을 만든 스페인에서도 7위를 기록했다. 원작의 후광 효과와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굳이 이미 유명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다시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것도 이런 시너지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작품의 출연진도 화려하다. 유지태, 김윤진, 박해수, 전종서 등이 나온다. 연출은 드라마 ‘보이스’ ‘블랙’ 등을 만든 김홍선 감독이 맡았다. 총 12부작으로, 파트 1에 해당하는 6부작을 이번에 먼저 공개했다. 나머지 6부작을 담은 파트 2는 올 하반기에 나온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교수’(유지태)를 중심으로 한 8명의 강도단이 조폐국에서 4조원을 훔치려 하며 시작된다.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한반도 특수 상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작품은 1화 오프닝부터 이 점을 강조한다. ‘도쿄’ 역할을 맡은 전종서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겨 듣는 북한의 아미(방탄소년단 팬)로 등장한다. 조폐국도 남북한이 함께 운영하는 ‘공동경제구역’에 설립돼 있다. 이런 설정 자체는 참신하나, 다소 인위적이고 어색하게 그려진다. 극 중 내내 남북한 인질들 사이에 오가는 차별적 발언과 팽팽한 대립도 마찬가지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로 느껴진다.

원작에서 살바도르 달리 가면을 쓰고 있던 강도들이 한국판에선 하회탈을 쓰고 있는 점은 글로벌 팬들을 겨냥한 설정으로 보인다. 글로벌 팬들이 ‘킹덤’에 나온 갓에 열광했듯, 하회탈에도 관심을 보일지 주목된다. 원작에서 남학생이 영국 대사의 딸을 상대로 불법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는 설정이 사라진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큰 흐름은 대체로 원작을 따른다. 조폐국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조율하는 교수의 모습, 돌발 행동으로 경찰 총에 맞게 되는 인질의 얘기 등이 비슷하다. 4조원을 통째로 훔쳐서 달아나는 게 아니라, 이 돈을 새로 찍어낸다는 주요 설정도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한 얘기만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건과 구성을 조금씩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리메이크작의 묘미는 대대적인 변화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변주에 있다. 차별화를 위한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엉성한 변주가 오히려 몰입감을 떨어뜨린다는 평가가 많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