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늘려라" 한마디에…한전, 경영난에도 매년 1500명 뽑아
한국전력이 2015년 사상 처음으로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뽑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공공기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대박”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1년에 1000명 넘게 뽑는 공공기관은 한국수력원자력을 빼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1년에 1000명의 직원을 뽑겠다고 하면 공공기관 상위 5위권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한다. 공공기관 채용 확대를 노골적으로 주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벌어진 풍경이다.

◆文정부 ‘일자리 확대’ 주문에 채용 급증

13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매년 평균 1544명의 정규직을 뽑았다. 2018년 1780명, 2019년엔 1772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이런 채용 확대는 한전이 사상 최악의 경영난을 겪는 시기에 벌어졌다. 한전이 최근 5년 중 연간 기준 영업이익을 낸 것은 2년밖에 안 된다. 지난해엔 5조8601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는 적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일자리 늘려라" 한마디에…한전, 경영난에도 매년 1500명 뽑아
다른 공공기관의 상황도 비슷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5년 내리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뽑았다. 최근 5년 입사자는 5524명으로 현재 인원(지난해 말 기준)의 36.5%에 달한다. 근로복지공단도 5년 동안 3970명을 채용했고, 이는 현재 인원의 53.6% 수준이다. 일부 중소형 공공기관은 이 비율이 60~70%로 치솟는다. 직원의 절반 이상이 6년차 미만이라는 의미다.

공공기관 채용 인력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새 공공기관이 만들어졌고, 이들 기관은 수천 명의 인력을 채용했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와 한전MSC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은 2019년 이후 3년간 각각 6317명, 4973명을 정규직으로 뽑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기존 공공기관들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채용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2020년 시행한 ‘공공기관 자율정원 조정제도’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제도는 공공기관이 기획재정부 승인 없이도 정규직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정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2020년 3월 제도를 조기 폐지했다.

당시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참여한 한 인사는 “공공기관의 인력 팽창 욕구를 견제할 장치가 없어지니 다들 채용 규모를 크게 늘렸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공공기관 경영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전 정부는 또 평가지표에 일자리 창출 항목을 신설하는 등 공공기관장에게 채용 규모를 늘릴 것을 직간접적으로 주문했다.

◆“늦기 전에 공공기관 개혁 나서야”

경영계에서는 이런 비율이 비정상적이라고 진단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민간기업의 6년차 미만 비중은 10~20% 수준”이라며 “민간기업들은 갑자기 많은 인력을 고용하면 나중에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신규 채용 인력이 갑자기 늘어 혼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워낙 많은 인력을 동시에 채용하다 보니 이들을 적당히 분배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며 “일부 부서는 일을 시작한 지 2~3년밖에 안 된 ‘초짜’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직원들끼리 갈등을 빚는 사례도 많다. 일부 공공기관 직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개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정부가 공공기관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인력 운용이 방만해진 게 사실”이라며 “이미 뽑은 인력을 줄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기능을 조정하고, 해당 인력을 새로운 자리에 배치하는 등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병욱/정의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