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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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 A씨는 2017년 한 원생의 부모로부터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녹화 내용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만에 하나 공공형 어린이집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우려한 A씨는 이 영상을 삭제했다. 수리업자를 불러 CCTV 영상이 녹화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후 수사기관에는 “하드디스크를 버렸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증거인멸에 나선 A씨는 결국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대법원은 지난달 A씨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게 아니라 ‘훼손한’ 사람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으로는 이번 사례와 같은 ‘황당한’ 판결이 어려워진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를 처벌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벌칙규정(제54조 제3항)에 ‘훼손한 자’도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지난달 대표발의했다.

'훼손한 사람'은 무죄라는 대법원

이번 판결에서 A씨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한’이라는 한 단어 때문이다.

검찰이 A씨에게 적용한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설치한 CCTV의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처벌 조항인 54조3항은 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사람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A씨는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영유아보육법은 주의 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이 사건처럼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는 ‘영상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훼손당하는 주체가 영상 정보라는 것에 착안한 하드디스크를 숨기거나 버린 운영자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A씨에게 5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법조문을 확장 해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죄를 선고한 원심은 결국 울산지법으로 파기환송 됐다.

미비한 법 조항피해자만 '피눈물'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는 2015년 1월 인천 송도 아동학대 사건을 공론화됐다. 당시 송도 어린이집에 설치돼 있던 CCTV에는 교사들이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배를 차고, 맞은 아이는 그 충격으로 날아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장면 등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버섯을 먹지 않고 토해낸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충격적인 영상에도 ‘어린이집 원장·보육교사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주장에 법 시행은 그해 말에나 이뤄졌다.

법조계에선 법 개정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등에서 처벌조항에 대한 검토가 미비했다고 지적한다. 이 법과 형태가 비슷한 개인정보 보호법에는 ‘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지 않아 개인정보를 훼손당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과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각각 따로 있다. 반면 영유아보육법은 CCTV 설치·관리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게 할 뿐 훼손한 자에 대한 명시 규정이 없다.
최 의원은 “CCTV를 고의로 훼손한 어린이집 원장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울뿐더러 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처벌대상자에 ‘훼손한 자’를 규정해 법 해석상에 논란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업계에선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하반기 중 개정안 통과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