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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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건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업가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생명보험 체결 동기가 수상하더라도, 이를 명확히 입증할 수 없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망자 A씨의 유족이 보험사 3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중국에서 의류업을 하던 A씨는 사업의 실패로 2015년 귀국했고, 그해 1∼3월 모두 10건의 사망보험계약(총 보험금 31억여원)을 체결했다.

그는 마지막 생명보험계약 체결일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2017년 3월께 가출해 숨진 채 발견됐다. 보험 계약상 자살면책제한 기간이 2년이었다.

보험사들은 "A씨가 보험금을 부정취득할 목적으로 다수의 생명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무효"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우선 이 가운데 3개 보험사를 상대로 약 6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엇갈린 하급심…1심 "부정 취득 목적" vs 2심 "입증 증거 부족"

생명보험 10개 가입 후 사망한 사업가…대법 "보험금 지급해야"
1심은 보험사들의 손을 들었다. A씨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무렵 안정적인 수입이 없었고, 주식 투자로 상당한 손실까지 본 상태였던 만큼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A씨가 한두 달 사이에 인터넷으로 생명보험 계약을 집중적으로 체결한 점, 사망 시점이 마지막 보험 가입일로 부터 2년이 지난 시점이라는 점을 근거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석연치 않은 사정들이 있긴 하지만, 명확히 그 동기를 입증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중국에 상당한 예금 채권이 있고, 이외에 한국과 중국에 아파트, 자동차, 현금 등 자산이 있어 10건의 보험유지에 들어간 월 70여만원의 보험료가 과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또한 A씨가 2016년 의류 상표를 출원하거나 아파트를 매입한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망인이 단기간에 다수의 보장성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정 등에 비춰 동기나 목적에 다소 의문은 있지만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석연치 않은 사정들만으로는 보험금 부정 취득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