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어린이 존중' 문화운동서 출발…창작동화·그림책 시장 열려
해방 후 60∼70년대 주목할 작품 쏟아져…권용철 '들국화'·권정생 '강아지똥'
2000년대 들어 해외 본격 진출…백희나·이수지 등 세계 독자들도 주목
[100주년 어린이날] ③방정환이 싹틔운 한국아동문학, 세계속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 등이 주도해 1922년 제정한 어린이날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1920년 일본 유학 중 현지에서 풍성한 어린이 문화를 접한 뒤, 홀대받고 배움 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조선의 어린이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일본에 유입된 서구 동화를 번안해 조선으로 보냈고, 1922년 개벽사에서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이 출간됐다.

이 동화집은 그가 쓴 서문으로 유명하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그윽히(그윽이)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
1923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는 등 '아동문학 효시'로 불리는 방정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아동문학은 100년 만에 백희나, 이수지 같은 그림책 작가를 배출하며 세계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100주년 어린이날] ③방정환이 싹틔운 한국아동문학, 세계속으로
◇ 어린이 문화운동서 출발해 창작동화·그림책 시장 열려
우리 아동문학은 일제강점기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문화운동과 자라나는 세대에게 광복의 민족정신을 일깨우려는 민족운동 일환으로 시작됐다.

박상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은 "아동문학을 통해 암울한 시절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많은 동요시인들이 배출됐고, '어린이'를 비롯해 '신소년', '아이생활' 등의 잡지를 중심으로 동요시가 성행했다"고 말했다.

초창기 동화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명작 동화를 번안하거나, 구비 문학인 설화·전설·민담에 바탕을 뒀다.

이후 옛이야기인 전래동화와 설화, 전설 등을 토대로 창작된 창작동화 등으로 발전했다.

국내 최초 창작 동화로 전해지는 건 마해송의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다.

발표 시기를 두고는 1923년('샛별'지), 1926년('어린이'지)로 견해차가 있지만 문헌으로 확인된 건 '어린이'지 신년호다.

김용희 아동문학 평론가는 '한국 동화 문학의 흐름과 미학'에 수록한 평론에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아동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설화 발굴을 통한 동화 개척에 있기보다 개인적 체험이 당시 유행하던 전설 유래담을 모방 모델로 해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해방 이후엔 아이들의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는 동화가 많이 나왔다.

1960~1970년대 등단한 작가들인 권용철의 '들국화'(1965), 권정생의 '강아지똥'(1969), 김병규의 '나무는 왜 겨울에 옷을 벗는가' 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 창비는 1977년부터 동화·동시 등을 아우른 창비아동문고를 선보이며 창작 동화의 산실 역할을 했다.

1980~1990년대에는 미술 운동을 하던 작가들이 출판계로 옮겨오면서 창작 그림책 시장이 열렸다.

예술성과 장르적 특징을 가진 창작 그림책의 효시는 1988년 출간된 류재수 작가의 '백두산 이야기'다.

1990년대엔 작가들의 유입과 출판사들의 고전 그림책 번역 출간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고, 2000년대엔 백희나, 이수지 등이 발군의 창작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100주년 어린이날] ③방정환이 싹틔운 한국아동문학, 세계속으로
◇ 세계적인 성과 이수지·백희나…밀리언셀러 황선미·김중미 등
한국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해외 아동 도서 저작권을 주로 수입했으나 2000년대 들어 뛰어난 기획력과 작가진의 성장으로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동 도서는 국내 도서 중 수출 경쟁력이 가장 높은 분야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콘텐츠의 전방위 확산 속에서 출판 한류의 견인차 역할을 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20년 도서저작권 수출 건수는 전년도 기준 총 2천142건이며, 그중 아동 분야가 1천158건으로 54.1%를 차지했다.

특히 그림책의 경우 3대 아동문학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2004년을 시작으로 올해 이수지, 최덕규 작가까지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 백희나가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을, 이수지 작가는 올해 3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달리 그림책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아동문학계 노벨상'인 안데르센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큰 성과다.

언어장벽이 없는 그림책은 문화 차이까지 감안한 정교한 번역이 필요한 글 중 심의 동화보다 상대적으로 세계 독자들에게 다가가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달 콜롬비아에서 열린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도 남미에서 여러 작품을 출간한 이수지 작가가 크게 주목받았다.

[100주년 어린이날] ③방정환이 싹틔운 한국아동문학, 세계속으로
최근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아동문학 시리즈가 나왔다.

지난달 6권이 나온 김리리 작가의 창작 동화 시리즈 '만복이네 떡집'은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김리리 작가는 "글·그림 작가를 아울러 지금 아동문학 시장은 훌륭한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며 "과거 '엄마는 거짓말쟁이'(2003)를 번역 출간하면서 만난 스위스 출판사 관계자가 '1990년대 후반까지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서구 책을 한국에 너도나도 수출했는데, 이젠 반대로 한국 책을 수입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앞서 권정생의 '몽실언니'(1984), 황선미의 '나쁜 어린이표'(1999)와 '마당을 나온 암탉'(2000), 고정욱의 '가방 들어주는 아이'(2002) 등이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랐고,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은 어린이 단행본으로는 처음 200만 부 고지를 찍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마당을 나온 암탉'은 미국 펭귄출판사를 비롯해 수십 개국에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 독자가 줄고 책을 구매하는 대신 도서관 등에서 대여해 읽는 환경이 되면서 아동서적 작가와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공공도서 대출과 관련해 저작자와 출판계에 일정 비율을 보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는 우리 아동 문학이 '출판 한류'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상재 이사장은 "작품의 해외 진출을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면 출판 한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반 동화나 아동·청소년 소설도 번역 지원을 통해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문학 장르의 모호한 개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용희 평론가는 "동시, 동화, 그림책 등 전문 분야가 있는데도 뭉뚱그려 아동문학가라고 통칭한다"며 "예전과 비교하면 동심의 문학이란 개념으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덜 발달한 아동이 독자라는 시각은 여전히 문제"라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