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발표한 뒤 공개한 국방부 청사의 조감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발표한 뒤 공개한 국방부 청사의 조감도. 연합뉴스
청와대 터가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1426년 경복궁 후원(後園·집 뒤의 정원)으로 활용되면서다. 일제는 1939년 이 곳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조선 왕실의 기를 누르고 ‘용맥(龍脈·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을 자르려는 목적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총독 관저로 이사하면서 경무대라고 불렀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4·19혁명 뒤 경무대를 청와대로 바꿨다.

청와대 터를 두고 길지(吉地)-흉지(凶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풍수지리학자 지종학 씨는 청와대와 경복궁은 뒷산인 북악에서 좌우로 뻗어 낙산을 청룡으로 하고, 인왕산에서 사직단에 이르는 산줄기를 내백호로 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에 남산이 있고, 그 사이에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가두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를 이루고 있다며 좋은터라고 봤다.

반면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땅의 눈물 땅의 희망’이란 책에서 청와대 앞길을 경계로 사람의 공간과 신의 강림지로 나뉜다고 했다. 청와대 터는 신의 강림지로 죽음의 공간이라는 얘기다. 최 전 교수는 청와대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 터로 옮길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하야·시해·감옥행·탄핵 등 시련을 겪은 것도 흉지 사례로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것을 두고 신·구 권력이 충돌하고 있다. 용산은 풍수상 길지와 역사상 치욕이 엇갈린다. 조선 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는 이 곳 언덕에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용은 왕을 뜻한다. 이 때문에 많은 풍수지리가들은 이곳을 명당으로 꼽는다. 넓은 평지에다 남쪽으로는 한강을 끼고 있어 물자 수송에 편리하다. 북쪽엔 남산이 성벽 역할을 하고 있어 군사 요충지로도 좋다. 이 때문에 용산은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13세기 말 몽골군이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로 이곳을 활용하면서 외국군 주둔 역사가 시작됐다. 임진왜란 땐 왜군이, 임오군란 땐 청나라가 지휘소로 이용했다. 청·일 전쟁 이후 1945년 해방때까지 일본군이 전초기지로 삼았다. 해방 뒤엔 미군 시대가 열렸다.

용산을 청와대 이전 후보지로 꼽은 것은 윤 당선인 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이자 절친인 건축가 승효상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국방부를 외곽으로 옮기고, 그 일부를 청와대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지만, 경호 등 현실적 이유로 접었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안보 공백 이유로 당장 옮기는 것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낸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겨냥해 이전의 당위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우선 이전 공약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윤 당선인이 이전을 고수하는 데는 청와대의 불통 구조를 꼽고 있다. 청와대 입주가 불통과 부정부패의 출발이라는 인식이다.

윤 당선인 측 김용현 ‘청와대 이전 TF팀’ 팀장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나도 거기 들어가면 눈치 안보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나도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국민을 위한다면 내가 불편하더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바로 옆에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대국민 소통을 위해서도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실제로 청와대는 대통령이 나홀로 근무하는 구조다. 대통령 집무실 및 부속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은 500m 가량 떨어져 있다. 도보로는 10분 정도 걸린다. 문 대통령은 여민관에 집무실을 따로 마련했지만, 이전 정권들에선 대통령과 참모들 간 대면 접촉이 힘들어 전화 통화나 서면 보고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정권들에서 이 500m가 ‘불통’과 ‘인(人)의 장벽’을 만들어 낸 셈이다.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윤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 추진이 성급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공약이라도 선후를 따져보고 여론도 수렴하는 게 맞다. 그렇더라도 여권의 공격 행태는 도를 넘었다. 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까지 열어 후임자가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을 두고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이전한다고 약속해 놓고 실천하지 않은 마당이다.

여당에서 윤 당선인을 향해 ‘레임덕이 아니라 취임덕’ ‘윤석열씨’ ‘칼사위를 들이민다’ ‘망나니’ 등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당선인을 인정조차 않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특히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풍수지리, 무속까지 거론하며 용산 이전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면 말고’식, ‘괴담’식 여론전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운명은 결국 개인의 지도력과 역량의 문제일뿐 풍수와 연계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