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택과 집중의 시간
대선에 인공지능(AI) 바람이 분다. 엎드려 있거나 흔들리는 표심을 끌어올 수 있어서 돌개바람이든 헛바람이든 이런 바람은 대개 선거에 유익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요체를 이해한다는 이미지를 증강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해의 깊이는 중요치 않다. 후보들의 어림셈이다.

저인망식 AI 공약의 가벼움

인재를 기르고, 기술 개발을 지원하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주요 대선 주자들의 AI 공약은 최종 1강을 뽑는 공통과제 오디션에서 낙제를 겨우 면했다. 전문가들의 셈이 그렇다.

차별화를 고민한 흔적이 없는 건 아니다. AI 활성화로 세계 디지털 경제의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AI로 보이스피싱을 박멸하겠다”는 흥미로운 공약을 내놨다. 후보 토론에서 알고리즘을 디지털 경제의 핵심으로 꼽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임기 3년 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만들겠다”고 시한까지 못박았다.

공약은 보기에 좋다. 기왕의 해법들을 수집한 ‘답지의 재조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체성과 현실성이다. 유세 대상이 과학기술계라는 걸 빼고는 구체적 각론, 예산 확보 등의 실현 방안이 뒷전으로 밀린 건 타 분야 공약과 다르지 않다. 우리 정부의 한 해 연구개발(R&D) 예산이 미국의 10분의 1, 중국의 4분의 1이라는 ‘불편한 팩트’를 해결할 방안은 들리지 않는다.

초격차 기술 경쟁은 이미 속도전에 돌입한 마당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 절대량의 투입이다. 핵분열엔 임계질량(critical mass)이 절대적이듯, 때로는 산업적 ‘전면전(totaler krieg)’을 불사해야 비등점에 이를지도 모른다.

인재 육성만 해도 그렇다. 초등학생 AI 교육을 지원하는 동시에 대학생 심화교육도 강화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AI 활용까지 ‘모두’ 장려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초가 먼저인지, 활용이 우선인지부터 결단을 요구한다.

‘좌고우면’은 추격자의 자세와 거리가 멀다. 지금의 AI 기술 진화 속도 1년은 반도체, 자동차, 의료바이오 등 다른 산업의 10년이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이 나온다. ‘졸면 죽는다’는 얘기다. 한 AI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격차가 2년 정도면 추격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100m 달리기 기록이 0.2초 차이밖에 안 되니 해볼 만하다고 장담하는 것과 같다. 그 0.2초가 난공불락의 벽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난 24일 ‘AI강국 코리아로 가는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다음 정부를 위한 정책총서 포럼’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AI미래포럼과 한국공학한림원이 마련한 이 웨비나에서 김자미 고려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새 교육과정이 적용될 초등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2036년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AI 교육 시간을 1주일에 한두 시간 늘리는 시늉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냉엄한 경고다. 그는 “초·중·고 12년 전체 수업(1만2330시간)의 0.4%(51시간)인 AI 교육에 미래를 걸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결단을

이경전 경희대 교수의 지적은 울림이 크다. 그는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기 전, 무엇을 없애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를 과감히 폐지하겠다는 선언이 빠졌다는 질타다.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등 특정 신산업은 아예 지원도, 규제도 하지 않겠다는 명료한 선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은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다. 종종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가 더 유익했다는 걸 유권자들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