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딜레마
작년 말 필자는 2022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 발 물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것은 곧바로 1월에 일어났다. 유럽연합(EU)은 새해 벽두에 원자력과 천연가스 투자를 친환경(녹색) 활동으로 분류하는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채택했다. 환경보호론자의 시끄러운 항의에도 EU는 그 결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급격히 오르는 에너지 비용 위기 속에서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투자를 보류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반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넷제로(탄소중립)’ 집착은 그의 정치적 미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영국은 오는 4월부터 가정용 전기료 등 에너지 요금이 54%가량 인상될 것으로 예고했다. 빠르게 상승하는 전기료와 천연가스 가격은 기업도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영국 보수당 의원들은 존슨 총리의 넷제로 야망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기 위해 당원대회를 열었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부 장관은 북해 원유 시추에 대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 좌파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응을 강력히 주장하는 마이클 맨(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을 인용해 이런 노력을 ‘문화 전쟁’으로 낙인찍었다.

유럽 정치권은 지난해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장 피사니 페리가 했던 말에 뒤늦게 각성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바꿔 말하면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는 저렴한데 그 대안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탄소 저감 기술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치솟는 에너지 가격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 소비(에너지 또는 대부분의 생산품)를 억제할 수 있다. 또 비록 투자자가 수익을 극대화하진 못한다고 여길지라도 누군가는 친환경 투자에 힘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치인은 석유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최근 큰 수익을 발표한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셸 등 석유기업의 ‘폭풍 이익’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 회사들은 소비자를 속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주에게 발표한 계획은 수익을 통해 녹색 프로젝트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석유기업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물러나 정치적 탈선을 인정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들 좌파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공급 활성화는 정치권이 장기적 투자를 지지한다며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달려 있다. 영국의 탄소중립은 2050년이라는 마감 시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가 충분히 긴 수명을 가진 자본 집약적 프로젝트에 기꺼이 자금을 댈 수 있도록 이런 마감 시한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정치인이 뒤늦게 구걸하러 오면 투자자는 기꺼이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기후 운동가와 금융계의 열성적 지지자가 녹색 목표를 추구하며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에 따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이 가운데 ‘환경’을 의미하는 E가 등장했다. 정치인은 그런 흐름을 금융 규제에 포함하려는 노력에도 도움을 주었다.

EU의 녹색분류체계는 원자력과 천연가스 투자를 친환경 활동으로 여기도록 장려함으로써 기존 생각을 전복시켰다. 투자자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 정치인의 시급한 문제는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는 에너지와 금융시장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문화 전쟁일 것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Europe’s Net-Zero Carbon Crackup Begins Ahead of Schedule’을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