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헌정파괴에 대항한 시민의 정당행위"…군사법원 판결 41년 만
이소선 여사 계엄법 위반 재심 무죄…시민단체 "늦었지만 환영"(종합)
1980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증언하다가 계엄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故) 이소선(1929∼2011) 여사가 4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부장판사는 21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이 여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가 1980년 12월 군사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41년 만이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도서관에서 열린 시국 성토 농성에 참여해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경위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증언하고, 닷새 뒤인 9일 영등포구 노총회관에서 '노동 3권 보장'·'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 등 구호를 외친 혐의를 받았다.

당시 계엄 당국은 이 집회가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불법 집회'라는 이유로 이 여사를 체포했고, 1980년 12월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이 여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형 집행은 관할 사령관의 재량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은 검찰이 지난 4월 1980년대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 처벌받은 민주화 운동가 5명에 대한 직권 재심을 청구하면서 열리게 됐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전두환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 지휘권을 장악한 뒤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 범죄"라면서 "피고인의 행위는 시기와 동기 등에 비춰 헌정질서 파괴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라며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시국 성토 농성과 노동자 집회에 참석해 시위를 벌인 내용, 목적, 동기 등에 비춰볼 때 이는 1979년 12월 12일부터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파괴 범죄에 대항해 시민이 전개한 민주화운동 및 헌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해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의 차남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71)씨는 이날 뒤늦게 도착해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씨는 취재진과 만나 "계엄군이 왜 어머니를 전국에 지명수배해서 감금하고 군사재판을 했는지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1분여 만에 선고가 끝나 아쉽다.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전태일재단은 선고 뒤 성명서를 내고 "국가의 판결은 비록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무죄 판결은 이소선 어머니 한 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모든 전태일과 이소선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하기를 사법당국에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