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운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최근 글로벌 물류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운 특성에 기인한다. 항공업은 국가 간 조약에 의해 항공노선이 허가제로 운영돼 투입 항공기 대수와 운항 횟수가 사전에 정해지지만, 해운은 완전 자유경쟁 체제여서 어느 나라 선박이건 일정 요건만 갖추면 어느 나라 항구에서건 화물을 자유로이 운송할 수 있다.

미주 노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코로나로 물류 종사원들이 급격히 줄어든 반면 가전제품 등 상품 수요가 급증하자 이를 실어나를 선박이 부족해진 데 따른 것이다. 해운 특성상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용할 수 있는 선박이 미주 항구에 모여들어 결과적으로 미국 항만에 극심한 정체를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혼란과 정체가 미국 항만에 많은 선박을 묶어둬 다른 곳에서 가용할 수 있는 선박 수를 감소시켜 모든 항로에서 선박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만약 미주 노선에 예전과 같은 강력한 동맹이 존재했다면 동맹이 보유한 모든 선박을 투입해 선박당 적재율을 최대한 높이고 선박의 속도를 증가시켜 비록 어느 정도 지체는 발생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공황상태의 선복 확보 투쟁을 화주들이 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동맹은 공표된 운임표에 의해 크고 작은 화주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운임을 부과하고 선적 예약순서에 의해 공정히 화물을 선적한다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대화주 우대정책에 의해 대화주가 우대를 받고 중소화주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동맹의 전용 터미널에 신속히 화물이 내려지기 때문에 극심한 혼란은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맹의 존립 이유인 것이다. 불필요한 경쟁을 제한해 화주에게 양질의 운송 서비스를 적정한 가격에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동맹의 목적이다.

현재 동맹 약화의 원인은 과거 해운강국으로서 동맹을 사수하고 유엔 ‘정기선 헌장’을 주도했던 유럽 해운강국들이 막강한 정기선 선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의 이해관계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항로의 동맹은 초기의 동맹을 필요로 하는 절실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유럽 5대 선사의 세계 해운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한국 중소선사들의 존립을 지키고 한국 화주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동맹이 절대로 필요하다. 유럽 거대 선사들의 일시적인 저운임 전쟁으로부터 우리 중소선사들을 지키고 우리나라 화주들에게 지속적인 운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필사적인 자위책이다. 운임 담합이 아니라 최소한 생존을 위한 운임을 설정해 공동으로 지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선사들이 운임 경쟁에서 패배해 시장에서 도태된다면 그후엔 시장을 독점한 외국 대형선사들이 고운임을 부과하고 선박 배정에서의 차별 대우를 우리나라 화주에게 행할 것이다.

동남아 항로에서 우리나라 컨테이너 정기 선사들의 재정 상태를 파악해보면 동남아 항로의 대표 선사격인 고려해운은 2003~2018년 16년 동안 연평균 영업이익률이 2.5%에 불과하다. 현대상선은 -2.25%이고 특히 2011년 이후는 8년 동안 -7.2%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런 실적을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선사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를 알 수 있다. 현재 호황이라고 하지만 이런 선박부족 상태에서도 한국 선사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10~15% 저렴한 운임으로 선박 적기 배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운임 담합에 의한 불공정한 운임을 우리 화주들에게 적용한 예가 없었다.

현 해운법 개정은 해운회사들의 운임 담합을 통한 시장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와 같이 해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오해를 불식하고 같은 상황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해운에서의 공동행위 특성을 이해시키고 그에 대한 합법성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