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슐린 발견 100주년
당뇨병(糖尿病)은 소변(尿)에서 단(糖)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부족해 혈당이 세포에 전달되지 못할 때 생긴다. 20세기 초까지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죽음의 병’으로 불렸다. 그러다 100년 전부터 ‘관리할 수 있는 병’으로 바뀌었다. 비결은 인슐린이었다.

인슐린 추출과 치료에 성공한 인물은 캐나다 의사 프레더릭 밴팅이다. 어릴 때부터 단짝이던 친구가 당뇨 합병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본 그는 개를 대상으로 실험에 몰두했다. 91마리까지 실패한 끝에 92번째 ‘기적의 순간’을 맞이했다.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주사 맞은 개가 몇 시간 뒤 제 발로 일어서 꼬리를 흔들었다. 1921년 일이다.

밴팅은 이듬해 중증 당뇨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14세 소년을 살렸다. 모교인 토론토대 병원 중환자 50명 중 46명의 증세도 완화시켰다. 인슐린 효과가 알려지자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렸고, 몇 달 새 수백 명이 목숨을 건졌다. 그의 단짝 친구도 기사회생했다.

이 공로로 밴팅은 1923년 최연소(32세)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함께 수상하지 못한 동료에게는 상금의 절반을 나눠주고, 인슐린 관련 특허는 모교에 단돈 1.5달러를 받고 기증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중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인슐린은 제약사들의 대량 생산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인슐린을 체내에 주입하는 방법도 점차 개선됐다. 초기엔 인슐린 펌프가 너무 커서 배낭처럼 메고 다녀야 했지만, 1976년 소형 펌프가 개발된 뒤로 간편해졌다.

당뇨 예방에는 체중·운동·혈당 관리가 중요하다. 혈당이 높아 피가 끈적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규칙적으로 혈당을 측정해야 한다. 요즘은 손가락을 찌르지 않아도 되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등장해 ‘채혈 불편’도 줄었다. 엊그제 국내 연구진은 땀 속 당분으로 혈당과 심전도를 동시에 재는 패치센서까지 개발했다.

그런데도 당뇨 환자가 세계 인구의 17%나 된다. 우리나라에만 500만 명이 넘는다.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꼴이다. 매년 11월 14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밴팅의 생일을 기념해 정한 ‘세계 당뇨병의 날’이다. 올해는 인슐린 발견 100주년이기도 하다. 한 세기 전 그가 펼친 인술(仁術)의 참뜻만큼이나 당뇨병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높이면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