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세를 뒤집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취임 후 줄곧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 풀기에 집중했던 바이든 정부가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경제 전략을 바꿀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제 대국들이 잇따라 기록적인 물가 상승률을 보고하자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이 끓는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세가 세계 경제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중·일, 일제히 가파른 물가상승세

"美 근원물가 7% 넘을 수도"…Fed 금리인상 시계 더 빨라질 듯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상승해 1991년 이후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뺀 근원 CPI도 전년 동기 대비 4.6% 상승했다. 1991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일본이 11일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PPI)도 전문가 전망치(7%)를 훌쩍 넘어 전년 동기 대비 8%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전날 공개된 중국의 PPI도 1년 만에 13.5% 뛰었다. 1995년 8월 이후 26년 만에 연간 상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 유럽 등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난 뒤 급격한 물가 상승은 월례 행사가 됐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무너졌던 경제가 회복하면서 뒤따르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란 평가가 우세했다. 매달 각국이 기록적인 물가 상승률을 보고했지만 수개월간 투자자들의 매수 심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던 이유다. 8일까지 뉴욕증시 간판 지수인 S&P500은 8거래일 연속 신고가를 경신했다. 2019년 4월 이후 최장기간 랠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주식은 물론 장·단기 국채까지 투매 행렬이 이어졌다. 투자자들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등에 대비해 대응에 나섰다는 의미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대부분의 기업이 가격 인상 압박을 호소했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커져 가격이 오르면 여파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Fed에 대한 비판 늘어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언 셰퍼드슨 판테온이코노믹스 수석경제학자는 “이달 근원 CPI는 맛보기에 불과하다”며 “전년 대비 근원 CPI는 앞으로 3개월간 6.0~6.5%를 향하고 7%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 고공행진에도 제로 수준의 정책 금리를 유지하는 Fed에 대한 비판도 늘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고문은 “이런 물가를 (Fed가) ‘일시적’이라며 계속 얕잡아보다가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알렉산더 림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도 “노동 공급이 회복되고 공급망 혼란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Fed가 곤란을 겪게 될 것”이라며 “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실상 모든 분야로 물가 상승세가 번지고 있어서다. 음식점들이 사람을 구하지 못해 임금 인상에 나서면서 외식비가 큰 폭으로 올랐다. 기업들은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미 주거비용도 가파른 오름세다. 대개 주거비는 실제 가격 변동이 일어난 시점보다 12~18개월 정도 늦게 CPI에 반영된다. S&P 케이스실러 지수 기준 올해 8월 미 주택구입 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8% 상승했다. 이달 주거비가 전년 대비 3.5%밖에 오르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상승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인플레이션 쇼크가 투자 시장에 ‘패닉 셀링’ 물결을 키웠지만 아직은 금융시장이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도 우세하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지만 3월 말 기록했던 올해 최고치(연 1.749%)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기업들이 잇따라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낙관론을 키우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지현 기자/뉴욕=김현석 특파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