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거리에 붙어있는 불법 사금융 전단지의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명동 거리에 붙어있는 불법 사금융 전단지의 모습. 사진=한경DB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의 올해 대출 여력이 1조원가량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2금융권의 월평균 가계대출 잔액 증가폭이 3조원대인 것을 고려하면 보름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2금융권 대출 공급이 축소될 요인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조만간 발표할 가계부채 보완 대책의 주 내용으로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조기 강화 방안이 거론되는데, 이 조치가 2금융권으로 확대 적용될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이에 제도권 금융회사 전체의 대출 문이 닫히면서 돈이 필요한 중·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결국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날 우려가 제기된다. 평균 이자율이 연 50%에 달하는 초고금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찾아야 할 창구가 불법 사금융 업체 한 곳만 남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2금융권 대출 끝이 보이는데…'DSR'까지 조이겠다는 정부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새마을금고를 제외한 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문금융사, 보험사 등 2금융권의 올해 대출 여력은 약 1조1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미 여신전문금융업권은 올해 총량 목표치를 넘긴 상태다.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평균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 기준 올해 대출 한도는 3조2000억원인데, 지난달 말 가계대출 증가액이 5조원을 기록해서다. 상호금융업권도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이 6%(14조5300억원)로 집계되면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4.1%를 초과했다. 올해 말까지 이어질 대출자 상환금을 고려하면 총량 목표치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나, 신규 대출을 내주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조금이나마 대출 여력이 남은 곳은 저축은행업권과 보험업권뿐이다. 9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18.7%(5조9000억원)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21.1%를 살짝 밑돈다. 약 7000억원의 대출 가능 잔액이 남아있는 것이다. 보험업권의 경우 대출 가능 여력이 4400억원 남짓이다. 9월 말 기준 증가율이 3.7%(4조6000억원)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4.1%(5조400억원)에 약간 못 미쳐서다.

연말까지 두 달 넘는 기간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2금융권 전체의 대출 여력이 1조원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올해 2금융권의 월평균 가계대출 잔액 증가 규모가 3조33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 여력은 보름치도 남지 않은 상태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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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 대출 공급이 대폭 축소될 요인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오는 26일 발표할 가계부채 보완 대책으로 2금융권 대출 문을 더욱더 강하게 조이는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서다.

금융당국은 이번 가계부채 대책에 2023년 7월까지 3단계로 나눠 강화할 계획이던 차주 단위 DSR 규제 시기를 앞당기고, 2금융권에 DSR 40%를 확대 적용하는 조치를 담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DSR 규제로 제2금융권에 대출이 밀리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차주 단위 DSR 규제 한도는 은행권이 40%, 비은행권은 60%로 설정돼 있다.

DSR은 개인이 소득 대비 갚아야 할 모든 원리금의 비율을 의미한다. 해당 조치가 시행된다면 현재 '규제지역의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한해 적용되고 있는 DSR 40% 규제가 은행권은 물론 2금융권까지 적용된다. 현재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지금까지 대출을 많이 받아온 사람은 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가계부채 보완 대책은 상환 능력에 맞게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자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발표 직전인 만큼 자세한 내용 언급이 불가하나, 은행이나 2금융권 등 특정 업계를 겨냥하기 위한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아닌 전체 가계대출 관리 방안에 대해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들 '年 이자 50%' 불법 사금융 밀려나나…"점진적 규제책 필요"

대출 여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강력한 대출 규제 조치까지 예고되면서 그간 2금융권을 주로 이용해온 취약계층이 결국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짙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대출 총량 수치는 맞출지언정 가계부채 질은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사금융 업체가 차주들로부터 받는 평균 이자율은 연 50%에 육박한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불법 사금융 업체의 평균 이자율은 연 46.4%로 조사됐다. 이는 법으로 규정된 금리 상한선 연 20%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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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금융시장 환경을 감안하면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에 밀려나는 현상이 가지는 심각성은 더욱 크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리 상승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여서다. 금리 상승 시기에 고금리 상품을 보유하면 이자 부담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커지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높아질 경우 대출을 보유한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는 12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득이 줄어든 상태에서 상환 능력이 낮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빚을 청산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는 사태가 연달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는 "서민들의 대출 창구에 해당하는 2금융권 대출까지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추후 연이은 금리 인상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제도권 밖으로 떠밀려질 경우 문제는 개인 파산에 그치지 않고, 국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남을 수 있단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강 명예교수는 "서민들의 실수요가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무조건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책만을 고집하는 것은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반적인 거시경제 흐름을 먼저 살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규제가 불법 사금융 시장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쳐 자산가격 폭락으로 이어지고, 금융권 생태계가 무너져 제2의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점진적인 규제 및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