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현금 부자’로 불린다. 벌어놓은 이익이 많아 외부 차입 없이도 조 단위 투자를 척척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삼성전자가 최근 ‘실탄’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투자액이 이익을 넘어서는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어서다.

3일 삼성전자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이 회사의 현금은 111조1000억원이다. 131조8700억원이던 1분기 말보다 20조원가량 줄어들었다. 여기서 현금은 예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 금융상품, 단기상각후원가금융자산(짧은 기간에 매도가 가능한 금융자산), 장기 정기예금 등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현금에서 차입금을 뺀 순현금은 100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1분기 말 111조8900억원이던 순현금이 94조3700억원으로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13조6000억원 안팎의 시설투자가 이뤄졌고 배당금 재원으로도 15조원 정도가 쓰였다고 설명했다. 9조6300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배경이다.

물론 삼성전자의 현금 창출력은 여전하다. 증권사들이 제시한 이 회사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은 15조7631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현금성 자산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까지 3년간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겠다고 지난달 24일 발표했다. 올해 1분기부터 이뤄진 투자액을 합해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분기당 평균 20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연구개발(R&D) 투자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지만 시설 투자는 대부분 보유 현금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당장 급한 것은 미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증설이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는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삼성전자의 투자 결정이 임박했다며 구체적인 부지 위치를 거론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대형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있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최고재무책임자(CFO·사장)는 올해 초 열린 지난해 4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이번 주주환원 정책 기간(2021~2023년)에 의미 있는 M&A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대형 M&A 기조엔 변함이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서병훈 삼성전자 IR담당 부사장이 지난 7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3년 안에 의미 있는 규모의 M&A 실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경제계 관계자는 “반도체 패권전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변수”라며 “승기를 잡기 위해 삼성전자가 예상보다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