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고의 한옥고택] 신혼초야, 노블레스 오블리주
올 여름의 마지막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뒤늦은 태풍 소식에 집을 나선 발걸음이 무겁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역병은 해를 넘겨서도 불안한 소식만 전해져온다.

여름의 끝자락에 강원도 영월로 길을 나선다.
주천면 고가옥길 27, '조견당'

서울에서 제천까지 KTX로 1시간, 제천에서 조견당까지 자동차로 20km 남짓하다. 마침 열차 내에 있는 잡지도 '영월'을 소개하고 있다. 가볼만한 곳으로 연당원, 김삿갓 유적지, 법흥사, 청령포가 있다고 한다. 조견당은 없다.

도착할 즈음.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지만, 200년 고택의 청정함은 가리지 못한다. 조견당에서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에게 고택은 어떤 의미일까?

세월이 겹겹이 쌓인 무게로 살아가는 오래된 한옥? 에어 비앤비가 가능한 한옥 팬션의 또 다른 이름? 세월을 덧대면서 성장하는, 문화가 있는 한옥이 진정한 고택이 아닐까?

조견당의 안채는 자연스러운 형태의 천년의 세월을 지닌 대들보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전통 건축물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들보 옆, 1평 반 남짓한 '작은 방'에서 시작된다.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집집마다 5~6명의 애들이 좁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다.
익숙한 일상은 관혼상제와 같은 경조사에는 깨지기 마련이다. 결혼하더라도 손님을 맞이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음식도 충분치
않다. 부모 된 마음에 어렵게 마을의 큰집에 부탁하게 된다. 고택의
안주인은 흔쾌히 승낙 한다. 결혼식과 손님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한시름 놓게 된다,

문제는 결혼식 이후이다. 새신랑 새신부가 주천강 강가를 하염없이 왔다 갔다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신혼여행도 없었고, 좁은 집에서
신혼 첫날밤을 치를 수 없어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조견당 안주인의 따뜻한 마음 씀이 다시 시작된다.

막내딸이 사용하는 안채 작은방을 비우게 한다. 사춘기의 막내딸은 자기 방을 낯선 이방인에 사용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였을까? 하지만
깨끗한 침구를 갖추고, 이제 그 방은 신혼부부의 초야를 치르는 방이
된다.

약 10개월 후 신혼부부가 얘기를 데리고 다시 마당에 들어서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렇게 시작된 배려가 주천마을의 새로운 풍습이 된다.
요즘에도 가족이 아닌 타인을 집에서 묵게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선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복이 있다” 라는 뜻이다. 적선이란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10명에게 밥을 사면, 그중 7~8명은 잊어버린다. 그러나 2~3명은 순수한 호의를 기억하여, 언젠가 다시 어떠한 형태로든 진심으로 돌려주고 싶어한다. 그 청정한 돌려받음이 '복'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과 매력이 있는 공간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한옥고택 소유자의 평균연령은 70대 중반이다. 마당이 넓은 고택의 관리도 점차 힘에 부친다. 뱀보다 풀이 더 무서운 것이 여름이다.

고택의 이야기를 전달하여주는 그 누군가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전문화된 '한옥고택관리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한옥고택관리사 협동조합이 손을 잡았다. 중장년의 일자리 창출과 전통문화 가치 보존을 위하여, 전문인력의 교육및 취업 연계에 나서고 있다. 또한 전국 한옥고택 협의체인 (사)한옥체험업협회도 적극적으로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문화는 인고의 기다림을 통하여 성장하고 성숙한다. 우리의 조그만
움직임이 큰 변화가 되기를 기다려 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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