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승리한 뒤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가 열렸다.”

기드온 라흐만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탈레반의 승리가 아프간 정권 교체를 넘어 세계 이슬람 권력 재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세계 경찰국가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며 아프간 철군 계획을 세웠다. 조 바이든 정부가 이를 시행하면서 미국 주도의 평화를 의미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 아프간 정권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9·11 테러 직후다. 테러 주범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지도자들의 은신처를 탈레반이 제공한 것으로 전해지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같은해 10월 아프간 침공을 단행했다. 당시 집권 6년차를 맞았던 탈레반 정권은 서방 국가들의 공습에 무너졌다.

테러 조직 소탕을 이유로 아프간에 개입한 미국은 역설적으로 ‘지하드’(성전: 신앙을 위한 투쟁)를 활성화시키는 동력을 제공하게 됐다. 미군 철수 계획이 탈레반 재집권으로 이어지면서다. 라흐만은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이 피델 카스트로 장기집권을 공고히 한 1959년 쿠바혁명에 버금간다고 진단했다. 베트남 공산화를 이끈 1975년 사이공 함락, 이란을 미국 최우방 국가에서 적대 국가로 바꾼 1979년 이란혁명처럼 아프간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아프간 내부 정치뿐 아니라 세계 이슬람 지형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이 국제 지하드의 근거지가 돼 아프간에서 재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낸 존 앨런은 “알카에다가 힌두쿠시부터 공개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불과 파키스탄에 걸친 힌두쿠시 산맥은 세계적 분쟁 지역으로 꼽힌다. 바이든 정부는 힌두쿠시 공격이 시작되면 바로 반격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현지 지형에 밝은 믿을 만한 지상군이 없는 한 대테러 작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프간은 파키스탄뿐 아니라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이슬람 강경 세력이 힘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란 정부에는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수니파인 탈레반이 아프간 내 시아파 탄압에 나서면 시아파가 집권한 이란으로 난민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고민도 커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수십 년간 비밀리에 탈레반을 지원해왔다. 탈레반 승리로 오랜 지원이 효과를 내겠지만, 파키스탄 내 강경 테러 세력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26건의 테러가 탈레반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엔 중국인 근로자 9명이 목숨을 잃은 자살폭탄 테러도 포함됐다. 인도의 무슬림 지역인 잠무카슈미르에서 분쟁이 재점화될 수도 있다고 라흐만은 분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