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부(負)의 소득세조차 쉽지 않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 이슈 중 하나는 기본소득이 될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거나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대선 후보나 야당의 대선 주자도 이에 대한 철학 없이는 대선 레이스를 치르기 힘든 상황이 됐다.

기본소득이란 전 국민에게 매달 혹은 일정 기간마다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이 지사는 최대 월 50만원을 거론했다.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자리를 로봇에 빼앗기는 시대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한다. 김낙회 전 관세청장,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온건한 보수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전직 재무관료는 ‘부(負)의 소득세’(마이너스 소득세)를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부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에 세금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다만 기존의 복지 혜택은 없애거나 대폭 줄인다.

기자는 기본소득은 물론 부의 소득세조차도 실현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0)라고 본다. 첫 번째 이유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금이 줄기 때문이다. 예를 살펴보자. 경기도의 한 군 지역에 사는 70세 할머니 A씨는 소득이 거의 없다. 대신 매달 3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으론 20만원가량을 매달 수령한다. 또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일자리사업에 꼬박 참여해 매달 27만원을 받는다. 서울에 사는 아들의 직장건강보험 덕에 병원비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청장 등이 제안한 부의 소득세로는 월 최대 수령금액이 50만원에 그친다. 부의 소득세 체계에선 각종 복지 혜택과 사회보험이 통폐합돼 사라지거나 축소된다. 위의 사례에서 기초노령연금, 노인일자리사업, 건강보험이 없어진다고 했을 때 A씨의 혜택은 월 67만원에서 50만원으로 17만원 감소한다. 만약 국민연금을 절반으로 깎는다면 줄어드는 돈은 27만원이 된다.

A씨보다 정부 지원금을 더 받는 사람이라면 줄어드는 돈이 더 많게 된다. 빈곤층의 반발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어떤 통치자가 지금부터 빈곤층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줄일 테니 양해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부의 소득세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고 하더라도 근로 의욕 저하에 따른 생산 감소라는 난제에 봉착한다. 미국에선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제안한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부의 소득세가 적용 가능한지를 따지기 위해 4개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근로시간이 남편의 경우 약 7%, 부인과 편모는 약 17% 줄었다. 정부가 돈을 나눠주는데 뭐하러 굳이 일하겠는가 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먼의 제안을 이론적으로만 뛰어난 모델로 보고 상아탑에 곱게 모셔뒀다. 대신 일하면 돈을 더 주는 근로장려금제도(EITC)를 도입했다. 한국이 2009년부터 시작한 것도 미국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부의 소득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부의 소득세 주창론자들은 그나마 ‘돈 문제’를 분명히 언급한다. 기존 복지 혜택을 통폐합하고 구조조정하고 부의 소득세로 이를 대체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주창론자들은 기존 복지 혜택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대로 두자는 얘기다. 올해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199조7000억원이다. 내년 예산 요구액은 219조원에 이른다.

만약 500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 1인당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연간 300조원이 들어간다. 내년 복지 쪽 예산 요구액을 더하면 519조원으로, 올해 한국의 총예산 558조원(본예산 기준)과 맞먹는다. 일부 세금 씀씀이를 아끼는 지출 구조조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실험만 하고 현실 세계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다 이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