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결혼식은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냥 미소가 지고 신랑, 신부 두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축복하게 됩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결혼식의 의미는 누구를 막론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혼식에서도 가끔 눈살 찌푸리는 일이 생깁니다. 바로 하객들에게 보답하는 식사, 뷔페에서입니다.



이번 결혼식도 뷔페 식사이용권을 받았습니다. 뷔페 장소는 꽤 넓고 큰 규모였습니다. 요리 종류도 장소의 크기에 맞게 다 먹어보지 못할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모양과 색깔도 상당히 먹음직스러웠고 어떤 음식을 먼저 선택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먹는 순간, 그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필자는 미식가나 음식 전문가가 아닙니다. 매일 <집 밥>하는 아줌마입니다. 언제부턴가 ‘남이 해 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며 사먹거나 바깥 음식이 좋아서 외식예찬가가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 뷔페 음식은 절반은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양 보다 질’이란 말은 불변의 진리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 시간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말보다 <글>이 소통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 글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일일이 만나지 못해 매일 SNS 상으로 인사와 근황을 나누는 경우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수다’는 직접 만나서 주고받아야 묘미. 필자도 아들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하루 일정은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막힌 물꼬가 터지듯이 말을 쏟아 냅니다.



이쯤에서 필자 가족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필자는 결혼을 안 하고 평생 홀로 사신 84세 ‘큰아버지’가 계십니다. 큰아버지는 열 살 때 열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보건소 검진을 위해 몇 번 집 밖을 나가본 것 외에는 나가신 적이 없습니다. 필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친정어머니가 지금껏 모시고 사시는데, 큰아버지가 우리 4남매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어왔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임종을 기다리는 중에 있습니다.
<사진: 큰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남해군 남해대교>



“고맙다! 건강해라! 잘 살아라!”

이 세 마디는 큰아버지로부터 필자가 늘 들어온 최고의 말입니다.



“큰아버지! 저 이제 서울 올라갑니다! 엄마 말 잘 듣고요.

큰아버지 좋아하는 막걸리 값, 여기 손에 드릴게요. 하하하!”

“그래, 고맙다. 건강해라! 잘살아라!”

“네! 큰아버지도요. 또 금방 올게요.”



이제 그 말씀 세 마디도 조카들한테 못 해 주시는 상황이 되고 보니, 그 말씀 세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많은 음식을 대접한다고 해서 그 입맛을 다 충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채울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이쯤에서 필자는 평소 우리가 하는 말에서 양 보다 질을 말하고 싶습니다. 말도 질적인 면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더 나아가서는 <질>이 <격>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의 정성 담긴 음식과 몇 마디의 사랑이 느껴지는 말이 그 사람의 ‘품격’이고 ‘인격’으로 아주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수201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