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29일 1990년 두 달여 간 극비리 추진된 한·소 정상회담과 한·소 수교 등이 담긴 외교 문서 2090권(33만쪽 분량)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 공개 문서는 30년이 경과돼 비밀이 해제된 문서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양국 외교장관은 1990년 9월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나 회담을 갖고 당초 실무급에서 합의했던 이듬해 1월1일에서 회담 당일로 앞당겨 기습 발표했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최호중 당시 외무부 장관은 “떳떳하고 올바른 일을 할 때는 그것을 주저하거나 늦출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처음 회담을 갖는 날 바로 수교하게 되면 더욱 뜻깊은 것이 될 수 있다”고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에게 말한다. 양국 수교 관련 공동성명서 발효일을 당일로 하자는 파격 제안에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늘은 특히 세계 정상들이 모여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논의하는 역사적인 날이 아닌가”라고 말하며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김일성이 직접 소련 당국에 반발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미구엘 스테클로프 소련 연방장관은 1989년 1월 방한해 “(김일성이) 소련 외무장관과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일성이 1988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장관에게 “소련이 헝가리식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주모스크바 대사관 이외의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언급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헝가리는 공산권에서 한국과 최초로 수교한 국가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읖 앞세워 한·소 수교에 앞선 1989년 헝가리와 수교했다. 김일성은 소련이 헝가리와 같이 북한과의 수교를 유지한 상황에서 한국과 수교할 경우 대사관을 제외한 외교사절 철수까지 언급하며 소련을 압박한 것이다.
한국은 ‘태백산’이란 암호명으로 극비에 한·소련 정상회담과 수교를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부터 계속된 소련과의 접촉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 통일에 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에 주한미군 철수나 군축을 언급한 점도 드러났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홍순영 당시 외무부 제2차관보는 1989년 4월27일 “한·소련 수교가 이뤄지면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질 수 있나”는 소련 극동문제연구소(FEA) 편집장의 질문에 “주변 4강의 교차 승인과 국제적인 보장이 확보되면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번에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고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