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톡톡] 교통은 복지? 자카르타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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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일할 때 차량 홀짝제를 피해 종종 아침에 일찍 출근한 적이 있다. 출근시간인 8시보다도 한시간 이상 빠른 7시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사무실에는 꽤 많은 직원들이 나와 있다. 아침 정체를 피해서 새벽같이 출근을 하는 것이다. 와서는 한국드라마 같은 것들을 보기도 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선 것이 피곤하여 탈의실에 간이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하는 직원도 많다. 집에서 채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이 젖은 머리로 출근해 사무실에서 드라이어를 사용해 말리는 직원도 보인다. 매일 고단한 아침이다.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카르타에서 살기도 하지만 동, 서, 남쪽에서 자카르타를 둘러싸고 있는 위성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경우들이 많다. 자카르타를 위시하여 남쪽의 보고르, 데뽁, 서쪽의 땅그랑, 동쪽의 버까시를 묶어 자보데따벡(Jabodetabek) 이라고 하고 여기까지를 보통 자카르타 생활권으로 본다. 이 대(大) 자카르타(Greater Jakarta) 지역에는 3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산다. 우리 사무실만 해도 자카르타를 포함하여 이 위성도시들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골고루 있었다. 출퇴근시간은 약 한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두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는 직원도 꽤 있었다. 최장 출퇴근 거리는 세시간이었다. 업무능률이 오를 리 없다. 지각과 결근이 잦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서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저녁이 있는 삶’도, 자기계발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비라도 오면 출퇴근 길은 더 힘들어진다. 비가 조금 오면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면 되지만 더 많이 오면 고가도로 아래 같은데 모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라이더들의 무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자카르타에 지내면서 현지인들로부터 한국에서는 어디에 살았는지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서울에서 일했지만 서울 북서쪽에 있는 도시에서 통근을 했는데, 자카르타로 치면 땅그랑 정도 되는 곳이라고 말하면 금방 이해를 한다. 통근거리는 30km가 넘었지만 대중교통망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고, 또 열차에서도 책을 읽는다던지 하면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일 때도 있었다.
만약 자카르타에서 사무실과 집 간 거리가 30km가 넘었다면 매일 험난한 출퇴근길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에 살 때는 잘 발달된 대중교통망을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자카르타에서 ‘교통이 복지’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자카르타에도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매일 80만명 정도가 이용하는 간선버스망 트랜스 자카르타(TransJakarta)가 있고, 지선은 미니버스가 운행한다.(Metromini, Kopaja 등) 택시 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랩(Grab) 같은 온라인 택시와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가 교통수단으로 급부상하였다. 작년부터는 도시전철(MRT)과 경전철(LRT) 구간들이 일부 개통되기 시작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카르타 광역권을 아우르는 교통망은 아직 부족하다. 철도 이용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타 교통수단과의 연계성이 부족하여 출퇴근 용도로 이용하기에는 아직 많이 불편하다. 자카르타 도시전철(MRT) 첫 구간이 완공되어 작년 3월부터 운행을 개시한 것은 큰 전환점이다. MRT에 대한 논의는 35년 전인 1985년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타당성 조사도 20번을 넘게 하고서야 비로소 2014년에 첫 삽을 떠서 5년만에 완공을 한 것이다. 첫 구간은 남북노선 중 남(南) 자카르타와 시내 중심부를 잇는 20km 13개 정거장 노선이며, 이후 2025년과 26년 남북라인 잔여 구간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 그 다음엔 동서를 가로지르는 노선도 남북노선처럼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개통된 자카르타 MRT는 일일 약 10만명 정도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천만명에 이르는 자카르타 인구를 생각하면 이용자가 많지는 않다. 아직 이용할 수 있는 구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노선이 확장되면 이용객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와 인근 도시들을 연결할 자카르타 광역권 경전철망(LRT)도 건설 중이다. 운행이 개시되면 장거리 통근자들의 출퇴근 길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 놓는다고 다는 아니다. 새로이 구축되고 있는 교통수단들이 제 역할을 하려면 일반 철도서비스와 도시전철, 경전철, 도시내 광역버스와 미니버스망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통합 교통망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해 12월 상업운행을 시작한 자카르타 LRT는 일일 이용자가 4천명 수준에 그쳐 고민이다. 총길이가 5.8km에 불과하고 오토바이 택시 등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토바이는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지만 출발지에서 목적지를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중교통망도 보행공간도 부족한 자카르타에서는 효과적인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 택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철도와 버스를 하나로 묶는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철역에 오토바이를 가지고 와서 오토바이는 세워두고 전철을 타는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가 가능하도록 주차공간 확충 등 전략도 뒤따라야 한다.
속도와 방향이 문제이겠지만 자카르타 대중교통망은 앞으로 점점 촘촘해져 갈 것이다. 출퇴근 길은 수월해지고 삶의 질도 제고될 것이다. 지금까지 워낙 대중교통망이 부족했던 만큼 체감하는 변화의 폭은 클 수 밖에 없다. 자카르타에서는 교통이야말로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투자를 통해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지의 하나이다.
우리 기업 진출 가능성도 따라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한국 회사가 광역버스망 트랜스 자카르타 일부 노선에 버스 차량을 공급한 적이 있고, 작년 말 개통한 자카르타 LRT 1단계 노선에도 우리 기업이 철도차량을 납품하였다. 우리 경험을 전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작년말 1단계에 이어 2단계 자카르타 경전철 사업관리용역도 수주하였다.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세계적 수준의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광역망까지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의 사례를 통합교통망에 대한 벤치마크로 제공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 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 팀장(crosus@koreaexim.go.kr)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카르타에서 살기도 하지만 동, 서, 남쪽에서 자카르타를 둘러싸고 있는 위성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경우들이 많다. 자카르타를 위시하여 남쪽의 보고르, 데뽁, 서쪽의 땅그랑, 동쪽의 버까시를 묶어 자보데따벡(Jabodetabek) 이라고 하고 여기까지를 보통 자카르타 생활권으로 본다. 이 대(大) 자카르타(Greater Jakarta) 지역에는 3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산다. 우리 사무실만 해도 자카르타를 포함하여 이 위성도시들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골고루 있었다. 출퇴근시간은 약 한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두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는 직원도 꽤 있었다. 최장 출퇴근 거리는 세시간이었다. 업무능률이 오를 리 없다. 지각과 결근이 잦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서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저녁이 있는 삶’도, 자기계발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비라도 오면 출퇴근 길은 더 힘들어진다. 비가 조금 오면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면 되지만 더 많이 오면 고가도로 아래 같은데 모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라이더들의 무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자카르타에 지내면서 현지인들로부터 한국에서는 어디에 살았는지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서울에서 일했지만 서울 북서쪽에 있는 도시에서 통근을 했는데, 자카르타로 치면 땅그랑 정도 되는 곳이라고 말하면 금방 이해를 한다. 통근거리는 30km가 넘었지만 대중교통망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고, 또 열차에서도 책을 읽는다던지 하면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일 때도 있었다.
만약 자카르타에서 사무실과 집 간 거리가 30km가 넘었다면 매일 험난한 출퇴근길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에 살 때는 잘 발달된 대중교통망을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자카르타에서 ‘교통이 복지’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자카르타에도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매일 80만명 정도가 이용하는 간선버스망 트랜스 자카르타(TransJakarta)가 있고, 지선은 미니버스가 운행한다.(Metromini, Kopaja 등) 택시 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랩(Grab) 같은 온라인 택시와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가 교통수단으로 급부상하였다. 작년부터는 도시전철(MRT)과 경전철(LRT) 구간들이 일부 개통되기 시작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카르타 광역권을 아우르는 교통망은 아직 부족하다. 철도 이용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타 교통수단과의 연계성이 부족하여 출퇴근 용도로 이용하기에는 아직 많이 불편하다. 자카르타 도시전철(MRT) 첫 구간이 완공되어 작년 3월부터 운행을 개시한 것은 큰 전환점이다. MRT에 대한 논의는 35년 전인 1985년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타당성 조사도 20번을 넘게 하고서야 비로소 2014년에 첫 삽을 떠서 5년만에 완공을 한 것이다. 첫 구간은 남북노선 중 남(南) 자카르타와 시내 중심부를 잇는 20km 13개 정거장 노선이며, 이후 2025년과 26년 남북라인 잔여 구간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 그 다음엔 동서를 가로지르는 노선도 남북노선처럼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개통된 자카르타 MRT는 일일 약 10만명 정도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천만명에 이르는 자카르타 인구를 생각하면 이용자가 많지는 않다. 아직 이용할 수 있는 구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노선이 확장되면 이용객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와 인근 도시들을 연결할 자카르타 광역권 경전철망(LRT)도 건설 중이다. 운행이 개시되면 장거리 통근자들의 출퇴근 길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 놓는다고 다는 아니다. 새로이 구축되고 있는 교통수단들이 제 역할을 하려면 일반 철도서비스와 도시전철, 경전철, 도시내 광역버스와 미니버스망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통합 교통망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해 12월 상업운행을 시작한 자카르타 LRT는 일일 이용자가 4천명 수준에 그쳐 고민이다. 총길이가 5.8km에 불과하고 오토바이 택시 등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토바이는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지만 출발지에서 목적지를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중교통망도 보행공간도 부족한 자카르타에서는 효과적인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 택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철도와 버스를 하나로 묶는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철역에 오토바이를 가지고 와서 오토바이는 세워두고 전철을 타는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가 가능하도록 주차공간 확충 등 전략도 뒤따라야 한다.
속도와 방향이 문제이겠지만 자카르타 대중교통망은 앞으로 점점 촘촘해져 갈 것이다. 출퇴근 길은 수월해지고 삶의 질도 제고될 것이다. 지금까지 워낙 대중교통망이 부족했던 만큼 체감하는 변화의 폭은 클 수 밖에 없다. 자카르타에서는 교통이야말로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투자를 통해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지의 하나이다.
우리 기업 진출 가능성도 따라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한국 회사가 광역버스망 트랜스 자카르타 일부 노선에 버스 차량을 공급한 적이 있고, 작년 말 개통한 자카르타 LRT 1단계 노선에도 우리 기업이 철도차량을 납품하였다. 우리 경험을 전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작년말 1단계에 이어 2단계 자카르타 경전철 사업관리용역도 수주하였다.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세계적 수준의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광역망까지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의 사례를 통합교통망에 대한 벤치마크로 제공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 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 팀장(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