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고사성어] (11)타산지석(他山之石)-만물이 모두 스승이다
배우려는 자에게는 만물이 모두 스승이다. 길가의 돌부리 하나, 바람 속의 티끌 한 점도 깨우침을 준다. 공자는 셋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모범은 따르고, 허물은 나를 살피는 거울로 삼으면 세상이 모두 스승이다. 소인은 성인에게조차 배우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앎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부처의 손바닥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원숭이가 바로 그런 소인이다. 배우려는 자와 배움에 뜻이 없는 자의 간극은 시작은 한 치지만 끝은 천 길이나 벌어진다.
공자는 두루 밝았다. 인간에도 밝고, 음악·시·역사·역(易)에도 밝았다. 공자는 당대의 시 수 천편 중 삼백여 편을 골라 ≪시경≫을 편찬했다. 소아편 학명(鶴鳴)에는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박달나무 심겨 있고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다른 산의 돌이라도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문자 뜻 그대로 ‘다른 산의 돌’이다. 한데 군자는 그 거칠고 하찮은 돌을 자신의 옥을 가는 ‘숫돌’로 쓴다.
돌은 소인이고 옥은 군자다. 돌은 옥을 시샘하고 흠집을 내려한다. 옥은 돌을 하찮다 하지 않는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을 벼리는 도구로 쓴다. 그러니 군자는 더욱 군자다워지고, 소인은 나날이 더 소인이 되어간다. 소인은 군자의 스승이다. 소인의 부족한 앎은 군자의 배움에 채찍이 되고, 소인의 낮은 덕은 군자의 덕행에 반면교사가 된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사방이 모두 스승이고, 세상이 큰 배움터다. 배움에 뜻이 없으면 세상 어디에도 스승이 없다. 소인에게 높음은 깎아내림의 대상이고, 허물은 들춰냄의 대상일 뿐이다. 군자는 자기를 나무라고, 소인은 남을 탓한다.
군자 소인 얘기가 나온 김에 공자의 말을 빌려 테스트를 하나 해보자. 공자는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고,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고 했다. 군자는 사람을 쓸 때 각자의 그릇에 맞춰 일을 주기 때문에 섬기기가 쉽다. 반면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니 도에 어긋한 것으로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소인은 반대다. 소인은 자기 생각대로 아래를 부리는 탓에 섬기기가 어렵다. 반면 도가 아닌 것으로도 쉽게 기뻐하니 비위맞추기는 쉽다. 당신은 누군가의 스승이자 누군가의 상사다. 공자의 기준으로 가늠하면 당신은 어떤 스승, 어떤 상사인가.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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