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선택이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선택으로 내일의 내가 있다. 현자는 중한 걸 취하고 사소한 걸 버린다. 어리석은 자는 반대다. 우자(愚者)는 이익을 위해 몸을 버리고, 권력을 위해 ‘나’를 버린다. 사소한 걸 취하고 중한 것을 버린다. 한데 살다보면 취함과 버림의 선택이 수시로 애매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이익이 손톱만한 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을 쳐다본다. 나를 어쩔거냐고.

계륵(鷄肋)은 누구나 아는 고사성어다. 말 그대로 닭(鷄)의 갈비(肋)니,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왠지 좀 아까운 거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그렇다고 팽개치기는 아까운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난처한 상황이다.

중국 후한시대가 저물어 가고 삼국시대에 접어들 무렵, 한중(漢中)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의 각축장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생산물이 풍부해 향후 ‘땅 싸움’을 가늠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비가 한중을 공략해 조조가 아끼던 장수 하후연을 죽이고 성을 차지했다. 격노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 수복작전에 나섰다. 한데 유비측 방어는 철벽이었다. 식량은 줄어가고, 병사를 마냥 한중에만 배치할 수도 없고…. 조조의 고민은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조조의 저녁으로 닭국이 올라왔다. 조조는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 갈비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 하후연의 형 하후돈이 그날 밤 암호를 물으러 왔다. “계륵으로 하게.” 조조가 툭 던졌다. 군의 행정 실무를 맡은 양수(楊修)가 그 말을 전해듣고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조만간 한중에서 철수할 터이니 미리 짐들을 챙겨놔라.” 병사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닭 갈비는 먹을 게 없지만 버리기도 아깝다. 주군께서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심중을 귀신처럼 꿴 양수를 ‘군심 교란죄’로 처형하고 태연히 철수했다. ≪후한서≫ ‘양수전’에 나오는 얘기다.

계륵은 몸이 마르고 허약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인 유영(劉怜)이 술에 취해 시비를 걸었다. 화가 난 상대가 주먹을 휘두르자 유영이 천연덕스레 말했다. “워낙 닭 갈비처럼 연약한 몸이라 당신 주먹을 받아낼지 모르겠소.” 맥이 빠진 상대는 그만 웃고 말았다. 둘 중 하나만 웃어도 싸움은 거기서 끝난 거다.《진서(晉書)》에 전해오는 얘기다.
취함과 버림에 정석은 없다. 동일한 중량도 처지에 따라 느끼는 무게가 다르다. 나눌까 독식할까 갈등할 때는 나누고, 참을까 욱할까의 순간에는 참고, 손 잡아줄까 그냥 지나칠까 고민될 때는 손 잡아주고, 그만 먹을까 한 수저 더 먹을까 망설일 때는 그만 먹어라. 그게 행복하고 가치 있고 건강한 삶을 사는 선택의 지혜다. 남의 속을 들여다 보려고  애쓰지 마라. 깊은 연못의 물고기까지 들여다보는 눈은 독이 되기 쉽다. 눈이 너무 밝아 스스로의 몸을 해친 자들은 역사에 무수하다. 어디서든 계륵은 되지 마라. 이왕이면 누구나 선호하는 닭다리, 닭가슴살이 되어라.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10)계륵(鷄肋)-버리기도 취하기도 아까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