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
멀어져야만 닿을 수 있는 평범함…영화 '정말 먼 곳'
강원도 화천의 한 양떼목장. 도시를 떠나온 '진우'(강길우)는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니지만, 함께 사는 목장 식구들과는 밥상에 둘러앉아 담소도 나누고,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무난하다.

그런 그에게 두 명의 손님이 차례로 찾아오며 안정적이던 삶은 변화를 맞는다.

첫 번째 손님은 연인 '현민'(홍경)으로 관객들에게 성소수자라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두 번째 손님은 쌍둥이 동생인 '은영'(이상희)이다.

은영은 딸 '설'을 진우에게 맡기고 사라졌다가 몇 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평화롭던 진우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영화 '정말 먼 곳'은 대부분의 사람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성소수자인 진우와 현민의 사랑은 황금빛 석양으로 물든 호수를 배경으로 한 실루엣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든다.

사회의 편견에 이미 여러 차례 상처받는 두 사람은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를 극복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버겁다.

멀어져야만 닿을 수 있는 평범함…영화 '정말 먼 곳'
박근영 감독은 최근 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가 '거리감'이었다"며 "개인과 개인 간의 거리감, 개인과 사회와의 거리감, 삶과 죽음의 거리감 등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거리감이 아프게 묘사된다.

성 정체성이 드러나자 마을 주민들은 모진 말들을 뱉어낸다.

이들의 눈치를 보며 힘들어하는 진우에게 현민은 "형 욕심 때문이다"라며 언성을 높인다.

영화는 이들이 실제 거리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얼마큼 더 멀리 떨어져야 평범하게 살 수 있을지에 관해 물음을 남긴다.

'정말 먼 곳'이라는 제목처럼 진우는 자신이 꿈꾸는 안식처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나왔지만, 이곳에서조차 주변의 시선에 좌절을 겪게 된다.

박 감독은 "연인이 '욕심'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이 딸을 키우고, 주변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는 점이 슬프게 다가왔다"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혐오로 인해 평범함을 꿈꾸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는 점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멀어져야만 닿을 수 있는 평범함…영화 '정말 먼 곳'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강원도 화천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부터 산속에 눈이 흩날리는 장면까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들은 영화의 차분한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촬영팀이 한 달간 불침번을 선 끝에 찍을 수 있었다는 새끼 양이 태어난 순간도 목가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다만 성소수자가 '아웃팅'(성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공개되는 것) 당하고, 주변 사람들이 죄다 등을 돌리게 된다는 전형적인 설정은 실제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두 인물의 관계도 '연인'이라는 설정에 국한될 뿐 특별한 연대감을 느낄만한 서사가 빠져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18일 개봉.
멀어져야만 닿을 수 있는 평범함…영화 '정말 먼 곳'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