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4차 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정·청은 설 연휴가 끝나는 대로 관련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다만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과 추경 규모 등을 놓고 당정 간 이견이 있어 추경 논의가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만나 올해 추경 편성 관련 논의를 했다.홍 정책위 의장은 이날 회동을 마친 뒤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빨리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이뤘다”며 “추경 규모와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등과 관련해서는 각자 입장을 정리해 설 연휴 이후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당·정·청은 이날 회동에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지만 구체적인 지급 방식과 추경 규모 등을 놓고서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4차 재난지원금은 선별지급과 보편지급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자 홍 부총리는 소상공인 등 피해 계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정책위 의장은 이에 대해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고민하는 기재부로선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게 맞고 당·정·청의 이견은 늘 있었다”며 “홍 부총리의 의견을 들었고 서로 의견을 잘 정리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일각에선 홍 부총리가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에 반대하는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서 4차 재난지원금도 2·3차 지원금에 이어 선별지급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소상공인을 더 두텁게 지원하면서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여당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동시 지급할 수도, 분리 지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지난 7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당정협의가 무산되며 확대됐던 당정 간 갈등도 봉합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설 이후 이어질 논의가 여당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명분을, 정부는 선별지급을 통한 재정 지출 최소화라는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홍 부총리의 버티기’가 조금씩 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제기된다.당·정·청이 올해 1차 추경 편성에 원칙적 합의를 한 만큼 여당은 목표한 대로 4월 재·보궐선거 이전에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날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욕심 같아선 3월을 넘기지 않고 도와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노경목/김소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
이명박 정부 때 한국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된 민관 공동기구 ‘중장기전략위원회’가 민간 자문기구로 쪼그라든다. 이에 따라 긴 호흡으로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미래 및 재정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정부 역량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장기간을 아우르는 국가 비전 없이 정부 정책이 부처별로 단기화·표피화하고 심한 경우 서로 충돌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9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중장기전략위원회를 민간 자문기구로 바꾸는 내용 등을 담은 ‘중장기전략위원회 규정 전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위원회에 기재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등 국무위원을 당연직 위원으로 둔다’는 기존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기재부 장관이 위촉한 위원장 1인과 20인 이내의 민간위원으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위원회의 목적도 ‘국가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전략의 수립, 원활한 재정정책의 수립·조정, 관계 중앙행정기관 간 협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심의’에서 ‘기재부 장관의 자문’으로 축소됐다. 위원회의 위상이 ‘심의·조정기구’에서 ‘자문기구’로 낮아진 것이다.기존에는 분기 개최가 원칙이던 회의 횟수도 반기별 개최로 바뀌었다.과거 정부는 미래 흐름을 예측하고 국가 장기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노무현 정부는 2030년까지의 장기 성장·복지 전략을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장기전략위원회를 설립했고 박근혜 정부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중장기전략위원회를 재가동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장기전략위원회는 2018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본회의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다만 기재부 측은 "중장기전략위원회 기능을 축소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기 위해 개편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간위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여러 정책 의견을 내면 추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정책 반영 여부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나라살림 지표가 계속해서 사상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 110조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역대급으로 줄었는데 지출한 돈은 급증해서다. 이런 와중에 여당이 4차 재난지원금을 ‘선별+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고 있어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상 초유 ‘2년 연속 세수 감소’지난해 국세수입은 285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조9000억원 줄었다. 2019년 국세수입이 전년보다 1000억원 줄어든 데 이어 2년 연속 줄었다. 국세수입이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1961년 이후 처음이다. 감소폭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2조1000억원)은 물론 2009년 금융위기(-2조8000억원)나 유로존 재정위기가 있던 2013년(-1조1000억원) 감소폭보다 훨씬 컸다.반면 지난해 정부 지출은 크게 늘었다.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 등으로 작년 1~11월 총지출은 501조1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7조8000억원 늘었다.들어오는 돈은 줄고 나가는 돈은 많다 보니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19년 54조4000억원에서 작년 1~11월 98조3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뒤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한 결과로, 재정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오는 4월 정부가 발표할 지난해 연간 재정적자는 100조원을 훌쩍 넘겨 110조원에 이르렀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정적자 규모가 100조원을 넘는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부동산·주식 거래세는 크게 늘어이마저도 부동산 세금 증가와 ‘동학개미’ 열풍 덕분에 선방한 결과다. 거꾸로 말하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주식투자 열풍이 불지 않았다면 세수 감소폭이 10조원을 넘어서고 재정적자 폭도 더욱 커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작년 국세수입을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는 전년보다 16조7000억원 줄어 가장 크게 감소했다. 코로나19로 기업활동이 위축돼서다. 지난해 1~3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90곳의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 줄었다. 소비와 수입이 줄어 부가가치세(-5조9000억원) 관세(-8000억원) 교통세(-6000억원) 등도 줄줄이 감소했다.반면 작년 증권거래세는 8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95.8% 늘었다. 정부가 작년 예산안을 짤 때 예상했던 4조9000억원보다 4조원가량 많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은 전년보다 각각 146.5%, 153% 늘었다.여기에 부동산 거래량이 늘면서 양도소득세도 전년보다 7조6000억원 많은 23조7000억원이 걷혔다. 주택매매 건수는 2019년 80만5000가구에서 지난해 127만9000가구로 58.9% 급증했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세수는 전년보다 9000억원 늘어난 3조6000억원이었다. 증권거래세와 부동산 관련 세수의 예상치 못한 증가로 세수 추계 오차도 발생했다. 지난해 세계잉여금은 9조4000억원이었다. 세계잉여금은 예산보다 더 거둬들인 세금, 예정된 지출 가운데 다 쓰지 못한 불용액 등의 합계다. 여당發 추경론에 재정 악화 우려올해도 재정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올해 예산안에서 예비비 중 상당 규모를 3차 재난지원금으로 소진한 상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실상 5차 추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여당에서는 연일 “20조~30조원 규모의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차 재난지원금에 필요한 돈은 대부분 적자국채를 찍어 조달해야 한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차별적 재정 확대와 이로 인한 국채 발행 증가는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리고 금융시장을 흔들어 또 다른 국가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이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소득에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늘어난 이들에게까지 재난지원금을 주기 위해 국채를 찍어낼 만큼 나라살림이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고 지적했다.구은서/서민준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