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4년간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한 M&A(인수합병) 플레이어를 꼽자면 단연 SK그룹이 거론된다. 3년간 경영권 인수 혹은 매각에 참여한 금액만 22조원을 훌쩍 넘는다(지분투자 등 제외). 왠만한 대형 PEF(사모펀드) 못지 않은 역동성과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시장을 뒤흔들어 왔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SK그룹이 “정유·통신 등 기존 주력 사업을 벗어나 언제라도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룹”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경 CFO Insight] SK '딥 체인지' 이끄는 주역들
그룹 내에서 M&A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조직을 살펴보면 크게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내 전략지원팀, SK㈜에 있는 투자센터, SK텔레콤의 코퍼레이트센터 등이 있다. 물론 해당 조직 뿐 아니라 각 계열사 M&A 조직 내에서 IB·전략컨설팅·로펌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수십건의 M&A 물건을 검토 중이다.

수펙스 내 전략지원팀은 매년 그룹 M&A 전략의 큰 반향을 정하는 것과 동시에 각 계열사들의 임무를 조율하면서 글로벌 M&A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총 인원은 30명 가량이다. 10~15년차 과장급이 보통 전략지원실에선 막내 수준이다. 그룹 내에서 S등급을 놓치지 않는 인재들이 합류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스톤,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국내외 유수 IB출신들도 포진해 있다. 과장, 부장 직급 임원들도 언제든 조대식 수펙스 의장과 독대하고 보고할 수 있을 정도로 그룹의 의사결정을 총괄하는 핵심 인재들이다. 과거 베트남 마산그룹(Masan Group)·빈그룹(Vin Group) 투자 등 그룹차원의 조단위 해외 투자 결정도 해당 조직에서 전담했다.

지주사인 SK㈜ 내에도 수펙스 못지않은 M&A 총괄 조직이 꾸려져 있다. SK㈜가 대내외적으로 '기업형 PEF'를 표방할 정도로 경영권 인수는 물론 지분 투자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다보니 가장 주목받는 조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사 투자 건 검토 외에도 SK E&S, SK건설, SKC, SK네트웍스 등 주요 자회사들의 M&A를 지원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SK㈜ 안에서 컨트롤 타워는 크게 행복디자인센터, 투자1센터, 투자2센터, 투자3센터 등이 꼽힌다. 투자1센터는 주로 반도체 소재·모빌리티 관련 매물을, 투자2센터는 셰일 에너지 및 신재생 분야를, 투자3센터는 제약·바이오 매물을 각각 검토한다. SK는 올 초 조직개편을 통해 행복디자인센터를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부문'로 변경하고, 투자센터들의 이름도 각각 첨단소재투자센터(기존 투자1센터)·그린투자센터(투자2센터)·바이오투자센터(투자3센터)로 명확히 했다.

기존 투자1센터장을 역임한 추형욱 센터장은 지난해 말 SK E&S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다. SKC의 1조원 규모 SK넥실리스(당시 KCFT) 인수를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과거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역임한 김양택 부사장이 뒤를 이어받았다. 투자2센터장이던 이호정 센터장은 SK네트웍스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무환 센터장이 신임 센터장을 맡을 예정이다.

SK머티리얼즈·SK실트론 등 지주사 M&A 성공 스토리를 썼던 첨단소재 분야 못지 않게 올해부턴 그린·바이오 투자센터의 역할이 강조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미래 먹거리로 선점한 만큼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관련 매물도 다각도로 검토할 전망이다. 새해 첫 M&A로 SK㈜와 SK E&S가 공동으로 글로벌 수소 에너지사 플러그파워를 낙점해 1조6000억원을 투입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SK는 지난해 초엔 삼정KPMG 출신으로 동아ST 글로벌사업총괄을 역임한 이동훈 부사장을 투자3센터장으로 영입해 바이오분야 투자 업무를 맡겼다. 지주사가 초기 단계 매물 검토 등을 담당하고, 자회사인 SK바이오팜 혹은 SK팜테코가 자금을 투입하는 형태로 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에도 미국 신약개발사 로이반트와의 전략적 제휴, 프랑스 이포스케시 인수 추진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주사 조직에서 M&A를 성공시킨 인물이 직접 해당 자회사 경영진으로 부임시키는 관례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SK건설의 1조원 규모 EMC홀딩스 인수를 도왔던 박경일 행복디자인센터장은 이번 인사로 SK건설의 사업운영총괄으로 자리를 옮겼다. 투자센터의 전신격인 PM2실 실장을 지낸 장용호 실장은 현재 SK실트론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역시 투자2센터장을 역임했던 이용욱 SK머티리얼즈 사장도 SK머티리얼즈 인수에 관여했다.

박정호 사장이 이끄는 SK텔레콤도 산하 자회사들의 M&A와 ICT관련 투자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키맨은 단연 SK하이닉스 노종원 부사장이 거론된다. 4조원에 육박했던 도시바 투자에 이어 이번 10조원 규모 인텔 낸드사업 인수까지 총괄한 그룹 내 핵심 인재로 꼽힌다.

SK텔레콤 내에선 코퍼레이트1센터에서 기존 통신(MNO)업과 관련한 M&A를, 맥쿼리 출신 하형일 센터장이 이끄는 코퍼레이트2센터가 신사업 M&A를 총괄한다. 연초 통신 부문 투자와 신사업(비통신) 투자의 비중을 두고 박정호 사장 앞에서 임원들이 끝장 토론을 여는 등 경쟁체제가 구축된 기업문화도 눈길을 끈다.

코퍼레이트2센터 내에선 전략투자그룹, 프라이빗 플레이스먼트그룹, 밸류그로스그룹 등 세 곳의 조직이 M&A를 담당한다. 최근 IB업계에선 전략투자그룹을 이끄는 송재승 그룹장이 주목받았다. 맥쿼리, 골드만삭스, 프랙시스캐피탈 등을 거쳤으며 최근 11번가의 아마존 투자를 IB 조력 없이 딜 소싱에서 마무리까지 전담해낸 인물이다. 프라이빗 플에이스먼트 그룹은 CVC캐피탈 및 L캐피탈 한국 대표를 지낸 허석준(찰스 허) 전무가 이끌고 있다.
[한경 CFO Insight] SK '딥 체인지' 이끄는 주역들
M&A 업계에선 그룹내 키맨들의 이동 못지 않게 그룹 M&A 구도를 읽는 또 하나의 단서로 최태원 회장을 보좌하는 조대식 의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및 SK하이닉스 부회장의 역학구도를 꼽는 시각도 있다.

물론 대내 및 대외적인 평가는 공식적인 그룹의 2인자인 조대식 의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 CEO들의 인사 평가권한을 쥔 수펙스 의장직 연임에 성공한 만큼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