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최대 4400만 명분의 코로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 각각 2000만 회(2회 접종 필요), 얀센 400만 회(1회 접종) 등 3400만 명분이다. 하지만 이 중 계약을 맺은 곳은 아스트라제네카 한 곳뿐이고 나머지는 계약이 완료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 말까지는 다 들어오게 된다. 확약할 수 있다”고 장담까지 했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데 자극받아 ‘확약’이란 말까지 꺼낸 듯하다.

문제는 내년 2월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국내에 도입되더라도 정부가 접종시기를 빨라야 내년 하반기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설명대로 백신의 효능·성공 여부가 아직 불확실하고, 부작용 우려도 있어 부득이한 측면도 있다. “선진국들로선 심각한 감염 상황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고, 위험을 안고서라도 접종을 강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박 장관의 설명이다. 우리가 늦은 게 아니라, 선진국들이 무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3차 대유행으로 경제가 얼어붙은 판국에 이런 해명에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박 장관의 실토에서 보듯, “정부가 늑장대응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내년 초 경제에 2차 충격파가 밀려들 것이란 전망(현대경제연구원)과, 내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경고(KDI)가 이미 나왔다.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내년 경영계획을 짤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이런 위급한 현실에서 부작용을 들어 접종을 늦추겠다는 자세는 한가해 보이기까지 한다.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하면 내년에 어떤 성장률 목표, 경제운용 청사진을 내놔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경 밀레니엄포럼 송년 웹세미나에서도 “백신을 얼마나 빨리 보급하느냐가 내년 경제를 좌우할 것”이란 진단이 주를 이뤘다. 이제라도 신속하고 충분한 백신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못하면 K방역 자랑만 하다 실기한 정부라는 오명을 남길지 모른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어떤 대책을 동원하더라도 제대로 된 백신 확보 없이는 ‘백약이 무효’란 점을 깊이 인식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