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추가열의 소풍 같은 인생
추가열 작사·추가열 작곡·2014년 발표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가듯 소풍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가사 전문)
쿵쿵자짜~ 쿵쿵자짜~ 반복되는 리듬에 걸쳐진 일상의 습생을 디테일하게 얽은 가사, 이것이 ‘소풍 같은 인생’의 인기 열쇠다. 여기에 가늘고 맑게 여운을 이어가는 추가열의 목소리는 어찌할꼬. 이 노래를 음유하다 보면 천상병 시인(1930~1993)의 시 ‘귀천’이 입안에 맴돌고, 그의 부인 문순옥(1935~2010)이 판을 펼쳐놓았던 인사동의 찻집 귀천(歸天)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추가열이 부른 ‘소풍 같은 인생’ 노래 2절로 이 시를 멜로딩하면 어떨까.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889에 가면 ‘천상병귀천공원’이 있다. 그는 일본 효고현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타계했는데, 강화에서 그를 추모하는 터를 연 것이다. 이곳에 ‘소풍 같은 인생’ 노래비를 곁들이면 흥이 더할 듯하다. 이곳에 가면 ‘귀천’시를 떠올리게 하는 서해바다 노을빛이 타오르고, 시인과 가수가 어우러지는 감흥이 샘솟는다. 필명을 심온(深溫)으로 쓴 천상병은 1967년 동백림사건(독일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돼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1993년 간경화로 타계했다. 그가 치른 옥고의 죄는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00원, 1000원씩 받아 썼던 돈이 공작금이었다는 것. 이후 천 시인은 1970년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됐는데, 당시 지인들은 그가 불귀의 객이 됐다고 생각해 유고시집 ‘새’를 발표했다. 그 후 1972년에 그의 손을 잡은 평생 인생 소풍의 반려가 친구의 여동생 문순옥이다. 그들은 소설가 김동리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추가열의 본명은 추은열. 1968년 충남 보령 태생으로, 의정부고등학교를 거쳐 1986년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한 포크 팝 가수다. 해군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는 2001년 이수만에게 통기타옴니버스음반을 제안하러 갔다가 발탁됐다. 추가열이라는 예명도 이때 붙었다. ‘가열차게 가수 활동에 매진하라’는 의미란다. 추가열은 이수만을 처음 만나서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불렀는데, 조용하던 이수만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이 노래, 무조건 100만 장짜리 앨범 된다”고 했단다. 추가열은 7080 포크계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있다. 가수는 천부의 소질 90에 더해진 노력 10이 인기의 비결이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