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자를 재난관리 기본계획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준비가 안됐다. 시간을 더 달라"(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
"시급성을 인정해서 충분히 스터디가 안 됐으니까 행정입법에 위임을 시켜 놓자. 정부가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국회 입법으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다"(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6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선숙 민생당 의원이 발의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정부 측 관할 부서에서 수차례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더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강력하게 밀어부쳤다. 의원들은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있다면 추가로 입법하자고 발언했다.

박 의원은 이번 법안이 'KT 화재 사건'이후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해 후속 법안을 마련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2018년 11월에 발생한 이후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가 20대 국회 말미에 급작스럽게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회법상 입법예고나 수석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 첨부 등의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개정안이 전형적인 '끼워넣기' 사례라는 시각도 있다. 법안을 발의한 시기는 3월 4일로 n번방 사태 후속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점이다. 여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법안에 종종 끼워넣기 형태로 관련 없는 개정안이 같이 통과되는 사례가 있다고 정치권 관계자는 설명했다. 동료 의원들도 해당 개정안은 n번방 사태와 관계없는 법이라며 시기상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헛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재난시 데이터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지만, 해당 법안에 담겨져 있는 설비통합운용 자료 공유, 정부의 설비 감독 조사권 보장 등의 의무 조항으로 데이터를 보호하기는 어렵다. 국내 사업자 다수가 아마존이나 구글 등 해외 업체에 데이터를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해외 업체에 대한 법 집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터넷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해외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국내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IDC는 데이터 관련 사업자들의 영업 비밀이자 핵심 경쟁력인데 개정안을 통해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을 경우 정보의 보안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며 "국가가 관리하는 IDC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전세계 어느 누가 데이터를 맡기겠냐"고 말했다.

국회 말미에 '끼워 팔기', '벼락입법' 등을 통해 소수가 이익을 챙기는 대신 그 피해는 고스라니 국민들과 기업들이 보게 된다. 이번 법안 역시 민간 IDC사업자를 정부의 관할로 둘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감시·감독 권한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한 국내 기업들이 아마존 등 해외 업체를 따라잡을 기회마저 잃을 수 있다. 정치권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