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상황을 고려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촉구합니다." - KCGI

"전자투표제를 시행할 계획이 없습니다." - 한진그룹


한진그룹이 '경영 난기류'에 빠졌다. 증시에서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치솟고 있고,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25~29일 사이 예정)에서 이른바 '표대결'로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4월부터 순항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로 인해 때아닌 '전자투표 제도 도입' 논쟁으로 신경전까지 팽팽하다. '지분 줄다리기'의 승패 여부가 국민연금(약 4% 지분 보유)과 소액주주들(외국인 포함 20%대) 표심에 달린 탓이다.

한진그룹은 주총 2주 전 이사회를 통해 주총 안건을 확정해야 한다. 이르면 이번 주 중 반대 측인 'KCGI·조현아·반도건설' 3자 연합의 주주제안이 정식 안건으로 채택될지 여부가 관건이다. 아울러 전자투표 도입 여부도 최종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3자 연합은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을 주축으로 하는 사내·사외이사 후보 8명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 측에서도 사내·사외이사 후보를 추가로 낼지 검토 중이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전자투표제가 정착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금융가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3자 연합은 이미 한진칼 주총장에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진그룹 측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라고 못박았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는 지난달 초 입장문을 통해 "전자투표제 도입할 경우 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여가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회사의 주주총회 관련 업무처리 시간이 단축되고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한 비용도 절감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달 25일에도 재차 낸 입장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들로 하여금 주주권 행사를 위해 주주총회장에 직접 출석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주주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한진그룹은 조속히 올 정기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진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에 이목이 집중된 만큼 전자투표제가 없어도 주총 참석률은 높을 것"이라며 "주주 참석률 측면에서 유인이 없는 상황이라 전자투표제 시행 계획은 없다"고 대답했다.

전자투표제는 일반주주들이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주주들이 주총장에 오지 않아도 투표를 할 수 있어서 통상 소액주주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한진그룹은 다만 지난해 정기 주총 참석률(77.17%)보다 올해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총 참여율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 그룹 관계자는 "여전히 경영권 분쟁 주체 간 한진칼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만큼 개인투자자의 주총 참여 여부가 주총 표심을 가를 여지는 낮아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중심으로 KCGI(강성부펀드)와 반도건설이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에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원태 회장 편에 섰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두 진영 간 보유지분 차이는 1.47%포인트(P)에 불과했다. 조 회장은 한진칼 지분 6.52%를 보유 중이며 이 고문은 5.31%, 조 전무는 6.4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재단 등 특수관계인 4.15%와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11.0%), 카카오(1.0%) 등을 합하면 의결권을 가진 총 지분은 34.45%다.

3자 주주연합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보유지분 6.49%를 비롯해 KCGI 17.29%, 반도건설 13.30%(계열사 포함) 등 37.08%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 와중에 KCGI는 전날(2일) 금융감독원에 한진칼의 주식 32만2200주(0.54%)를 더 샀다고 보고했다. 이로써 KCGI의 지분은 기존 17.14%에서 17.68%로 늘어났다.

그룹 내 가족 간 분쟁이 '루비콘 강'을 건너자 주가도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경영권 분쟁이 주가에 강력한 '이벤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진칼 주가는 외국인과 개인의 경쟁적인 지분 매입 덕에 상장 이래 처음으로 1주당 8만원을 돌파했다. 3일 오후 2시5분 현재 전날보다 21.69% 급등한 8만1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한때 8만4000원에 근접하기도 했다.

한진칼은 코로나19 여파로 급락장세를 펼친 시장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까지 8거래일 연속 뛰어오르고 있다. 이 회사 주가는 올 초만 해도 4만원을 넘지 못했었다. 주총을 앞두고 두 달여 만에 100% 이상 주가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한진칼의 단기 폭등세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이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매력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 대내외 영업상황은 오히려 코로나19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합리적인 주가를 좌우하는 열쇠는 합리적인 주주"라며 "기존 주주나 잠재 주주들이 비합리적이거나 감정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어이없는 주가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업의 가치와 무관한 이유로 주식을 사는 사람이라면 또 다시 가치와 무관한 이유로 주식을 팔아치울 것이다. 벌써 주총 이후 한진칼의 주가는 예측 불가능한 곳으로 진입한 것이 아닐까.
[정현영의 투心고心] 판 커진 한진칼 주주총회…8만3000원, 합리적 주가인가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