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꽃나무에 꽃이 지면 나무가 되지 - 양균원(1960~)
지상의 좌표에서
이대로 죽 건재하길 바랄게
어쩌면 나도 그대들 사이에서 그럴 수 있으리라
피는 잎, 지는 꽃, 우는 벌, 숨은 새
서 있는 나무들과 나누는 수만 걸음의 살가움
가장 깊은 것은 배경에 있다는 듯이
익명의 방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걸어갈수록 달콤해지는 것은
오직 푸르게 아무나가 되어 가는 나무들
더 이상 꽃의 이름으로 불러 줄 수 없는 누구나에게
얼굴 없는 바람이 멋대로
농을 걸고 있어서

시집 《집밥의 왕자》(파란) 中

나무에 꽃이 피면 무슨무슨 이름을 가진 꽃나무가 되지요. ‘나’도 그대들도 꽃나무처럼 이름을 가졌으나, 꼭 ‘나’라는 주인공이 되지 않고 그냥 아무나가 되어 배경이 되어도, 그래도 좋겠지요. 서로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옆이든지 앞이든지 뒤든지 아무렇게나 같은 공간에 평등하게 서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도 좋겠지요. 그래서 ‘나’와 그대들 사이에 경계가 사라지고, 농을 걸어도 좋겠지요.

김민율 < 시인(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