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번엔 '몰타계 돌풍'
이번에는 몰타계 돌풍이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첫 관문인 아이오와주 코커스(경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38)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이 케냐계 부친을 뒀고,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이민 3세인데, 부티지지는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의 이민자 2세다.

부티지지(Buttigieg)라는 이름부터 낯설다. 미국 방송들은 그와 인터뷰 할 때면 어떻게 발음하는지 꼭 묻는다. 본인 설명은 ‘Boo-tuh-judge’에 가깝다. 인구 42만 명의 소국 몰타에선 ‘부티지지’가 흔하고, 같은 성(姓)의 대통령도 나왔다. 부친 조셉 부티지지는 1979년 사우스벤드에 정착해 이곳 명문 노터데임대 문학교수를 지냈고, 이탈리아 좌파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영어로 번역했다.

부티지지는 벌써부터 ‘백인 오바마’로 불린다. 이민 2세, 하버드대 장학생, 일천한 정치경력, 뛰어난 연설솜씨, 중도 성향, 첫 경선 돌풍 등 닮은 점이 많다. 일찌감치 오바마도 그를 눈여겨보고 ‘민주당의 미래’라고 추켜세웠다. 부티지지는 2018년 동성결혼을 한 성소수자다. 그러나 2014년 시장직을 휴직하고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참전한 경력은 다른 후보들에게는 없는 강점이다.

부티지지는 짧지만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의 고교시절 스승은 “고3 때 그가 모든 대륙의 언어를 하나씩 배우고 싶어했는데, 마침 같은 반에 한국 출신 여학생이 있어 한국어를 배웠지만 오래는 못 갔다. 나중에 보니 영어 말고도 7개 국어를 하더라”고 놀라워했다. 부티지지는 아랍어, 아프간 파르시어까지 할 줄 안다. 하버드대에서 역사·문학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선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엄친아’다.

미국 사회가 흥미로운 것은 일상에서는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해도 톱클래스로 올라가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를 인도계와 중국계가 주름잡고 있고, 연예계와 스포츠 쪽도 유색인종 톱스타가 즐비하다. 인종 간 갈등이 잦아 ‘인종의 용광로’가 아니라 ‘인종의 샐러드볼’이란 비판도 있지만 고수(高手)는 누구나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몰타계 30대 동성애자’인 부티지지도 그런 관점에서 보는 듯하다. 1982년생 부티지지가 샌더스(78) 바이든(77) 워런(70) 등 노회한 70대 경쟁자들 틈에서 얼마나 선전할지 궁금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