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인 ‘뇌 속 노폐물’이 배출되는 주요 경로(핫스폿)를 한국 연구진이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을 통해 뇌 속 노폐물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뇌에선 대사활동의 부산물로 상당한 양의 노폐물이 생성되고 이는 뇌척수액에 실려 중추신경계 밖으로 배출된다.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 등 뇌 안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면 치매에 걸린다.

연구진은 생쥐 머리뼈를 얇게 박피한 뒤 자기공명영상(MRI) 실험 등을 해 뇌 아래쪽 ‘뇌막 림프관’이 노폐물 배수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막 림프관은 미세혈관에 복잡하게 둘러싸여 있어 그동안 기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연구진은 림프관만 특이하게 잘 보이도록 생쥐에 형광염색을 한 뒤 형광현미경으로 뇌 아래쪽 뇌막 림프관 위치를 확인했다. 혈관 내 역류방지장치 ‘판막’이 뇌막 림프관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막 림프관이 노폐물 배출 통로일 수 있다는 견해는 4년여 전 처음 제기됐지만 어느 쪽에 있는 림프관인지, 구조는 어떤지 등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진은 생쥐가 늙을수록 뇌막 림프관 기능이 떨어지면서 뇌척수액 배출이 어려워지는 현상도 실험으로 확인했다.

머리뼈 내부 좁은 공간에서 뇌척수액 배출이 막히면 이를 뚫기 위한 방어시스템이 작동해 압력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뇌막 림프관이 팽창하면서 기능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뇌와 척수를 물리적·면역학적으로 보호하는 뇌척수액은 그동안 뇌 상부의 거미막 정맥이 주 배출 통로로 여겨졌다.

고규영 IBS 혈관연구단 단장은 “뇌막 림프관의 배수 기능을 높이는 약물을 개발하면 치매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베타-아밀로이드 또는 타우 제거제,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 억제제 등 다양한 치매 치료약 개발이 시도됐지만 대부분 실패하거나 효능이 별로 없었다.

IBS 혈관연구단과 정용·박성홍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팀이 협력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 25일자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