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탄생 열돌을 맞아 기자는 지난 18일 찾은 경북 경산시에 자리잡은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를 찾았다. 공장 한켠에 자리잡은 5만원권 완제품이 비닐에 쌓여 있다. 이 완제품은 5만원권 1000장씩 묶음을 10개씩 묶어 포장한 것이다. 조폐공사의 권유에 기자도 5억원 돈더미를 품에 안았다. 10kg가량 되는 돈묶음을 오랜 기간 품에 안았더니 만감이 교차했다.
화폐를 찍어내는 공장은 코를 찌르는 잉크냄새와 지폐를 찍는 기계 소리로 넘쳐흘렀다.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 공장을 닮았다. 축구장만 한 이 공장에서 하루종일 찍어내는 5만원권은 10만 장 안팎에 달한다. 공정의 정확도를 위해선 온도와 조도가 중요하다. 공장 안은 사시사철 ‘23도±3도’를 유지하고 2000여 개의 백색 형광등이 구석구석까지 빛을 뿜어낸다. 온종일 울리는 기계 소음에 대다수 조폐공사 직원들이 귀마개를 끼고 작업한다. 공장의 한 직원에게 돈과 생활하는 기분을 물었더니 "돈이 돌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이 돈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이 공장은 촘촘한 감시망을 갖췄다. 돈의 고향인 만큼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는 '가'급 국가 중요 보안시설이다. 400여대의 CCTV가 설치됐고, 40여명의 경비인력이 밤낮으로 상주했다.
방문한 기자들도 그 감시망에 포함됐다. 공장에 들어가려면 핸드폰 카메라는 스티커를 부착하는 동시에 가방은 놓고 들어가야 한다. 기자가 그날 착용한 노트북 백팩의 용량을 고려하면 2억5000만원어치가량의 5만원권을 넣을 수 있다. 공장에 자리 잡은 기계 수십여 대는 부여 제지공장에서 공수한 흰 종이를 5만원권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종이 한 장에 5만원권 지폐 28개가 인쇄된다. 지문과 금액,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홀로그램을 부착하는 등 8단계 제조공정을 거친다. 공정을 마친 지폐는 40일 남짓 잉크를 말린 뒤 시중에 풀린다. 이 공장은 최근 10년 동안 5만원권 185조9392억원어치, 37억1878만 장을 찍어냈다.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 130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많은 돈은 어디에 있을까. 기자는 공장을 나와서 주머니에도 있는 꼬깃한 5만원권 한장을 어루만졌다.
지난해 한국은행 경제주체별 현금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거래용 현금의 43.5%, 예비용 현금의 79.4%를 5만원권으로 보유했다. 한은은 5만원권의 등장으로 연간 1000억원가량의 사회적 비용을 줄였다고 평가했다.
경산=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