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풍년이 반갑지만은 않은 농부
어릴 적 큰누나 졸업식 때 먹었던 짜장면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가격은 100원 수준. 변함없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인 짜장면의 가격은 2019년 평균 5250원으로 40여 년 전에 비해 50배 이상 올랐다.

짜장면 하면 양파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양파가 유난히 풍년이란다. 풍년이면 좋은 일인데 양파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양파농가들은 본전도 못 뽑아 죽을 맛이다. 20㎏들이 양파 한 망이 커피 한 잔 가격보다 못하다니 초봄부터 농민들이 쏟았을 땀과 정성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소비자단체가 서울에 있는 유통업체 300곳의 양파 가격을 조사한 결과 산지 가격이 보름 새 30%가량 떨어졌지만 소매가격은 불과 3%밖에 내리지 않았다. 농민들은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사태가 나는 반면, 소매가는 그만큼 떨어지지 않아 소비자도 불만이다. 양파는 유통 비용이 가격의 70% 이상으로 전체 농산물 평균보다 1.6배가량 높다. 장기 저장이 가능해 중간 유통업체의 입김이 센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드러났다.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채소류 가격이 전년 대비 11.9%나 떨어졌다. 정부는 4개월째 물가 상승률이 0%대 머무르고 있다며 물가가 안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는 다르다.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이들은 가격표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장바구니에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5만원, 10만원은 우습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외식물가는 더욱 심각하다. 치킨이 무려 7.2%, 김밥과 떡볶이는 5.9%, 된장찌개도 4.0% 오르면서 전체 외식물가가 2.0% 상승했다. 서민이 즐겨 찾는 국밥집과 학생이 주요 고객인 햄버거 가게들도 가격을 다 올렸다. 사상 처음으로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국제대회 결승에 오르면서 국민 야식인 치킨 주문량이 폭증했지만 이제 치킨도 2만원은 줘야 먹을 수 있다. 그만큼 호주머니 얇은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한편 상인들은 음식값 인상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지역에서 의정보고를 돌며 만났던 한 치킨집 사장은 가격을 인상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최저임금 급등에 따라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민생 경제의 핵심은 물가다. 너무 올라도 문제고 너무 내려도 문제다. 이를 적절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언제쯤이면 농민도 풍년을 즐거워하고, 장보는 이도 부담 덜 느끼고, 상인도 속 편히 장사할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