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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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디지털화 확산과 함께 종이영수증과 종이통장이 멸종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각 금융업권이 비용 축소를 위해 영업점에 이어 통장과 영수증 등으로 눈을 돌렸다.

10일 신용카드업계와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신용카드 영수증의 선택적 발급을 금융당국에 건의한 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는 카드 가맹점의 종이 영수증 발행 의무를 완화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을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부가가치세법에 따르면 카드 가맹점 등 사업자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때 즉시 영수증을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가맹점에 따라 고객에게 수령 의사를 묻고 이에 답한 고객에게만 영수증을 주고 있으나 영수증 자체는 발행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나오는 영수증 발급 비용은 관행적으로 카드사가 부담하는 만큼, 카드업계에서는 비용 감축 차원에서 당국에 관련법 개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부가가치세법이 개정되면 기본적으로 전자 영수증을 발급하고 소비자가 요청하면 종이 영수증을 출력해주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업계에서는 영수증 수령 의사가 없다고 하면 아예 발행 자체를 하지 말자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은 전자 영수증 발급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해 영수증 발급 비용은 얼마나 될까.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개 밴(부가통신업자)사를 거친 신용·체크카드 결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발급 영수증은 128억9000만건, 발급 비용은 560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밴사를 거치지 않고 카드사와 직접 결제·승인 내역을 주고받는 백화점 등 대형 가맹점을 포함하면 연간 약 1200억원의 종이 영수증 발급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한다.

지난해 카드 수수료 인하로 전방위적인 비용절감에 나선 카드업계로서는 영수증 발급 비용도 부담스럽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종이 영수증 한 건당 발급 비용은 7.7원, 카카오톡을 통한 전자 영수증 발급 비용은 5.5원 수준이다.

일부 카드사들은 이미 카카오페이 등을 통해 시범 운영 중인 전자영수증 발행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KB국민카드의 경우 다음달부터 '카드 매출전표 선택적 발급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무서명 거래가 가능한 5만원 이하 거래만 원칙적으로 가맹점용 카드 영수증만 발행되고 회원용은 고객이 원할 경우에만 발급되는 방식이다. 현재는 가맹점용·회원용 영수증이 모두 발행되지만 회원용만 선택적으로 발급하기 위한 수순이다.

은행권에서는 종이통장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년 9월께 신규 계좌 개설 시 종이통장을 만드는 사람에게 원가의 일부를 부담시키겠다는 계획인 만큼 이 같은 흐름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종이통장 제작원가와 인지세, 인건비 등을 더한 발행원가는 5000원을 훌쩍 넘어선다. 향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발급 비용은 2000~3000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한 금융거래가 활성화된 만큼 종이통장이 없어도 고객의 금융거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각행들이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양한 특판 상품을 선보이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20~30대 고객들에게는 종이통장의 중요성이 크지 않아진 점도 있다.

실제로 비대면 채널이 주요 거점으로 떠오르면서 전 금융업권에서는 오프라인 영업점 수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국내 17개 은행은 관리비 부담 등을 덜기 위해 지난 5년간(지난해 6월 기준) 오프라인 영업점포 수를 900개 가까이 줄였다. 대신 KB국민은행, 씨티은행 일부 은행들은 디지털 점포를 일부 시범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업계까지 이 같은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 교보생명은 이달 4일부터 신촌·잠실·서부산 고객플라자의 운영을 중지했다. 다음달 2일부터는 안양 고객 플라자도 운영이 중단된다. 신한생명도 지난달 7일부터 해운대 고객창구를 폐점했다. 해운대 고객창구는 지난해 1월 신설됐으나 약 1년여 만에 다시 문을 닫게 됐다.

다만 이 같은 흐름에서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의 금융활동이 한층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휴대폰과 컴퓨터 등 정보기기에 능숙하지 않은 중장년 및 고령 인구는 생활 전반의 디지털화·무인화 확산으로 불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적·사회적 여건 차이에 의해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 서비스 사용이 제한되면서 디지털 정보 격차 현상인 '디지털 리치 vs 디지털 푸어'가 조성됐다"며 "국민의 서비스 접근성과 삶의 질 보장 차원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오정민/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