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팰리스호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 수뇌부가 짐을 풀었다. 롯데가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자한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 석유화학공장 준공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다음날 신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미국 현지 인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13일쯤 백악관으로 좀 와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확신은 없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김교현 롯데 화학BU장, 조윤제 주미 대사, 신 회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사장).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김교현 롯데 화학BU장, 조윤제 주미 대사, 신 회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사장).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8일 신 회장은 공장이 있는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 도착했다. 이날 예상치 못한 인사가 일행을 찾아왔다. 실비아 메이 데이비스 백악관 전략기획 부보좌관이었다. 직접 트럼프 대통령의 축전을 들고왔다. 신 회장과 일행들은 이때서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 있겠구나’ 확신하기 시작했다. 롯데는 작년 11월부터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에 공을 들였다. 미국 사업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백악관으로 신동빈 롯데 회장 부른 이유
롯데, 작년 11월부터 트럼프 면담 시도

신 회장은 13일 오후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30여 분간 만났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면담한 첫 번째 국내 대기업 총수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롯데 신 회장을 백악관에서 맞이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그들은 루이지애나에 31억달러를 투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 기업으로부터의 최대 규모 대미 투자이며, 미국민을 위한 일자리 수천 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집무실 안 ‘결단의 책상’(미국 대통령 전용 책상)에 앉아 신 회장과 면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 측에선 조윤제 주미 대사와 김교현 롯데 화학BU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이, 미국 측에선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자리를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 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루이지애나에 투자한 건 잘한 일”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미국이 협조를 잘해줘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졌다”며 추가 투자계획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면담에서 조 대사가 “한국 기업들이 최근 들어 점점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다”며 “지금까지 한국의 대미 투자 누적액 가운데 4분의 1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 2년간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투자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치적을 내세우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과 사업 확대를 위해 미국 정부의 협조와 우호적 여론이 필요한 신 회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만남이 성사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 14일에는 지난 9일 준공한 롯데케미칼 석유화학공장이 있는 레이크찰스 지역을 방문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등을 둘러보고 에너지 인프라 및 경제성장 촉진을 주제로 연설할 계획이다.

트럼프, 백악관으로 신동빈 롯데 회장 부른 이유
트럼프와 미국의 롯데 배려

3년 전만 해도 롯데의 미국 투자가 이렇게 환영받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출발부터 그랬다. 2016년 6월 7일 신 회장은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때였다. 신 회장은 출국에 앞서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총회 참석 며칠 후 루이지애나 공장 착공식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다. 착공식 나흘 전 검찰이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계열사,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참모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미래가 더 중요하다”며 공장 착공식에 참석했다. 그만큼 애착을 보인 사업이었다. 이후 롯데그룹은 2017년 3월부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대대적인 보복에 시달려왔다.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 이해 때문에 의도치 않은 피해를 당한 대표적 기업으로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가 중국으로부터 당해온 보복과 피해를 잘 알고 있다”며 “롯데에 대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가 백악관 초청과 면담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면담엔 신 회장의 지인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에 대해 그동안 일본 인맥만 부각돼왔지만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졸업한 만큼 미국에도 상당한 네트워크가 있다”고 전했다.

류시훈/안재광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