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제조원 표기 의무 규정 놓고 '갑론을박'
화장품 제조원 표기 의무 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소 화장품 브랜드 회사들이 이 규정 때문에 수출이 급감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면서다. 대형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양측 모두 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표면적 이유로 들고 있지만 내부에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화장품 제조원 표기 문제는 올초 본격화됐다. 마스크팩 업체 L&P코스메틱의 권오섭 회장이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규제 개선을 요청한 것이 불씨가 됐다.

국내 화장품법은 제품 용기에 책임판매업자와 제조업자를 모두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책임판매업자는 화장품 판매와 유통을 담당하는 브랜드사, 제조업자는 화장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수탁생산하는 ODM이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다. 다만 수출 제품에는 제조원을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화장품 제조원 표기 의무 규정 놓고 '갑론을박'
중소 브랜드 화장품업체들은 내수와 수출 등 모든 화장품에 판매자만 표기하고 제조업자는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조사 정보가 노출되면서 외국에 ‘미투’ 제품이 양산되고 결국 국내 중소 화장품업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제조원 표기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다. 한국화장품중소기업수출협회 관계자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수출 허가를 받고 어렵게 시장을 개척했는데 중국 브랜드 회사들이 한국 ODM 회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뺏고 있다”며 “제조원 표기는 생산 노하우와 영업기밀을 해외 업체에 고스란히 노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형 화장품 제조사들은 제조원 표기를 없애면 ‘짝퉁’이나 불량 화장품이 난립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제조사들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유인이 약해져 한국 화장품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K뷰티가 성장한 것은 화장품 브랜드 회사와 제조사, 원료회사 등이 분업화된 시스템 아래 회사 이름을 걸고 기술 개발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정보가 공개된 정보사회에서 제조원 표기 때문에 미투 제품이 생긴다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소비자단체는 제조원 표기를 없애는 것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맞서고 있다. 선진국의 규정을 한국에 똑같이 적용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화장품의 제조원을 표기하지 않아도 제품 제조부터 판매까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력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업계와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을 듣고 현행대로 제조원 표기를 유지할지, 법 개정을 검토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